북미 픽업트럭 시장을 겨냥해온 현대자동차가 결국 수출 대신 2021년 현지 생산을 결정했다.
해당 모델의 국내 역수입 가능성은 사실상 제로에 가깝고, 국내 생산을 추진해도 화물차 혜택은 누리지 못할 것으로 전망된다.
현대차는 만일 국내 출시가 확정되면 화물차가 아닌, 또 하나의 SUV(스포츠유틸리티차)를 지향하며 시장을 정면 돌파한다는 계획이다.
13일(현지시간) 현대차 미국법인은 픽업트럭과 SUV의 장점을 결합한 크로스오버 트럭을 2021년부터 앨라배마 공장에서 양산한다고 밝혔다.
새 모델은 앞서 2015년 북미오토쇼에 선보인 콘셉트카 ‘싼타크루즈’가 밑그림이다. 이를 바탕으로 디자인과 편의성, 안전장비를 대폭 강화한다는 계획이다.
그동안 현대차는 2012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이후 픽업트럭에 부과된 고요율 관세 일몰 시점(2021년)을 기다려왔다. 현지 진출을 위해 2015년 콘셉트카 싼타크루즈를 선보이며 반응도 살폈다.
하지만 지난해 한미 FTA가 개정되면서 상황이 뒤집혔다.
우리 정부가 미국 측 요구를 수용하면서 픽업트럭에 대한 관세 인하 시점은 2021년에서 2041년으로 연기됐다. 현재 승용차 관세는 2.5%다. 반면 픽업트럭은 25% 수준이다.
결국 픽업트럭 관세 인하 시점이 연장됨에 따라 현대차가 수출 대신 현지 생산을 택했다.
앞서 선보인 싼타크루즈는 픽업트럭과 SUV의 강점을 갖춘 ‘2열 4인승’ 구조에 개방형 적재함을 갖출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차가 포니 기반의 소형 픽업을 생산한 이후 처음이다.
밑그림은 중형 SUV인 싼타페다.
다른 픽업처럼 화물차 기반의 ‘프레임 보디’가 아닌, 승용차 베이스의 ‘모노코크 보디’ 구조다.
적재함을 갖춘 픽업트럭 대부분이 프레임 보디인 것과 달리, 모노코크 보디의 픽업은 승차감과 주행 안정성, 실내공간 등에서 유리하다. 전자는 승객석과 적재함이 분리돼 있고, 후자는 일체형이다.
이미 일본 혼다가 중형 SUV 파일럿을 기반으로, 보디 일체형 적재함을 갖춘 픽업 ‘릿지라인’을 선보인 바 있다. 싼타크루즈 역시 혼다 릿지라인과 마찬가지로 캐빈(승객석)과 배드(적재함)가 일체형으로 등장할 예정이다.
결국 이런 사정으로 인해 싼타크루즈의 국내 시판은 미정이다.
먼저 앨라배마 공장 생산물량이 국내에 역수입될 가능성은 사실상 제로다. 이 경우 노동조합의 동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북미에서 인기를 끄는 기아차 대형 SUV ‘텔루라이드’도 같은 이유로 국내에 역수입이 무산됐다.
나아가 개방형 적재함을 갖춘, 외관상 화물차지만 국내에서는 화물차로 분류할 수 없다. 연간 2만 원대의 세제 혜택을 누리지 못한다는 뜻이다.
국내 법규상 화물차로 인증받기 위해서는 승객석과 화물 공간이 분리돼야 한다. 쌍용차 렉스턴 스포츠의 경우 프레임 보디 위에 두 가지 공간이 서로 분리돼 있다.
화물칸 면적이 승객석보다 더 넓어야 한다는 규정도 존재한다. 이래저래 싼타크루즈가 국내에 시판돼도 화물차로 인증돼 세제 혜택을 누리기는 어렵다는 뜻이다.
현대차 측은 “만약 국내 생산이 추진된다면 화물차가 아닌 ‘크로스오버’ 타입의 레저용 SUV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미 내수에서 3000cc급 그랜저가 베스트셀러에 이름을 올릴 만큼 배기량에 대한 거부감이 사라진 상태다. 여기에 과거와 달리 소득수준이 향상돼 2000~2200cc급 디젤에 대한 시장의 저항이 크지 않다는 게 현대차 자체 분석이다.
지난해 기준 쌍용차 렉스턴 스포츠가 사실상 독점하고 있는 내수 픽업트럭 시장은 약 4만2000대 규모. 현대차는 싼타크루즈를 내수 시장에 투입할 경우 기존 모델과 경쟁하는 것이 아닌, 사실상 새로운 세그먼트의 SUV 시장을 창출할 것으로 전망된다.
현대차 관계자는 “주요 권역본부별 현지 전략차종을 내놓는 것처럼 싼타크루즈 기반의 크로스오버 픽업 역시 같은 맥락”이라며 “국내 출시 여부를 검토한 바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