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시민의 42%가 이민을 고려하고 있으며 골드만삭스는 올해 6~8월 최대 40억 달러(약 4조7280억 원)의 예금이 홍콩에서 싱가포르로 흘러들어갔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13일(현지시간)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이 보도했다.
시위가 점점 더 과격해지고 사태가 가라앉을 조짐이 전혀 보이지 않으면서 탈홍콩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는 홍콩 경제 활력을 저하시키고 금융센터 공동화를 유발할 수 있다고 닛케이는 지적했다.
홍콩중문대학이 9월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이민을 희망하는 응답자 비율은 전년 동월 대비 8%포인트 상승했다. 이민을 희망하는 이유로는 ‘정치적 다툼’ ‘민주주의가 없다’ ‘중국 정부에 불만’ 등의 답변이 상위권을 차지했다. 지난해만 하더라도 비좁은 주택 등 ‘주거 환경’이 가장 큰 이유로 꼽혔지만 올해는 정치적 요인이 높아졌다.
이민 희망자 중 23%는 실제로 필요한 준비를 하고 있다고 답했다. 홍콩 경찰에 따르면 해외비자 취득에 필요한 ‘무범죄증명서’ 신청 건수는 지난달에 3597건으로, 전년 동월의 2배 이상이었다. 일부 시위대가 입법회(의회)에 돌입하는 등 시위가 과격화한 7월 이후 신청이 급증했다고 신문은 설명했다.
비자 취득 등을 지원하는 컨설팅 업체 홍콩 메이롄이민컨설턴트(美聯移民顧問)는 고객 문의가 6월 60건에서 9월 300건으로 급증했으며 30~40대의 관심이 높고 결혼해 이제 막 아이가 태어난 사람들도 있다고 밝혔다.
영어가 통해 교육환경이 좋은 캐나다와 호주 등 전통적인 이민 선호국가는 물론 대만과 유럽연합(EU) 회원국인 아일랜드, 포르투갈로의 이민을 고려하는 사람도 늘고 있다.
자금도 움직이고 있다. 8월 홍콩달러화 예금은 전월 대비 1.6% 줄어들어 1년 3개월 만에 가장 큰 감소폭을 나타냈다. 반면 싱가포르는 7~8월 외화예금이나 비거주자 예금이 크게 증가했다. 골드만삭스는 “홍콩달러화 예금에서 자금이 유출, 싱가포르의 외화예금 등으로 유입됐다”고 분석했다.
홍콩은 홍콩달러화를 미국 달러화와 연동시키는 달러페그제를 채택하고 있다. 이런 자금유출이 계속되면 시장 개입이 필요하다. 단, 홍콩의 외환보유액은 약 4300억 달러로, 유통되고 있는 현금을 크게 웃돌아 당장 페그제가 붕괴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시장 관계자는 거의 없다.
그러나 저명 헤지펀드 투자자인 카일 배스 헤이먼캐피털매니지먼트 설립자가 홍콩달러화 매도를 추천하는 등 투자자들은 홍콩시장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프랑스 투자은행 나티시스의 알리시아 가르시아-헤레로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대규모는 아니지만 홍콩에서 자본유출 흔적이 있다”며 “당국도 일시적인 현상으로 보지는 않는 것 같다”고 경종을 울렸다.
이날도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검은 티셔츠의 젊은이들이 곳곳에서 중국 본토 기업 점포를 파괴하거나 불을 질렀으며 도로를 봉쇄하는 등 과격 시위를 벌였다.
정부가 지난 5일 반세기 만의 긴급법 발동을 통한 복면금지법을 시행하면서 시위는 오히려 더욱 과격해졌으며 지하철 운행 중단 등 시민 생활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골드만삭스가 추정한 자금유출 규모는 홍콩예금 전체의 1% 미만에 그치지만 시위를 둘러싼 혼란이 계속되면 경제 충격이 더욱 확산할 것이라고 닛케이는 경종을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