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은 이날 달러·위안 기준환율을 전 거래일 대비 0.14% 내린(위안화 평가절상) 6.8896위안으로 고시했다. 인민은행이 기준환율을 통해 위안화 가치를 올린 것은 지난달 27일 이후 5거래일 만에 처음이다. 절상폭은 4월 18일 이후 가장 컸다.
인민은행이 이날 위안화 절상에 나선 것에 대해 미국의 눈치를 본 것이 아니냐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앞서 미국 재무부는 지난주 발표한 ‘반기 환율보고서’에서 중국을 환율관찰대상국으로 유지했지만 “중국의 환율 관행에 심각한 우려를 품고 있다”며 “중국에 대한 감시를 계속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7위안이라는 마지노선이 깨지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정부가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는 등 무역에 이어 통화 전쟁도 벌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미국 상무부는 지난달 23일 중국을 겨냥해 “통화 절하로 미국 산업에 해를 끼치는 국가들에 상계관세를 부과하는 규정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고 엄포를 놓았다.
인민은행의 대폭적인 절상에도 달러·위안 환율은 이날도 여전히 6.90위안 안팎에서 움직이고 있어 불확실성이 계속되고 있다. 지난달 달러화 대비 위안화 가치는 2.5% 하락했다.
블룸버그는 최근 수년간 아시아 각국 통화 중 위안화는 안전자산인 엔화와 비교적 취약한 것으로 간주되는 한국 원화, 인도네시아 루피아화 사이에서 중간적인 특성을 보였지만 미·중 무역 전쟁 확전으로 변동성이 커지면서 위험자산처럼 거래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멕시코 수입품에 5%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고 밝힌 이후 엔화 가치가 상승했지만 위안화는 떨어져 이런 변동성을 더욱 극명히 보여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부 전문가는 위안화가 약세를 보이면 중국의 수출 가격 경쟁력이 높아져 무역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대다수 전문가는 자본유출이 더욱 거세지고 막대한 달러화 부채를 안고 있는 기업들이 상환에 어려움을 겪는 등 중국도 불리한 처지에 놓일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JP모건체이스의 주하이빈 수석 중국 이코노미스트는 “2015년 위안화 약세 공포가 투자심리에 타격을 줘 막대한 자본유출이 일어났다”고 상기시켰다.
호주뉴질랜드뱅킹그룹(ANZ)의 쿤 고 아시아 리서치 대표는 지난주 미국 CN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위안화 약세가 관세 인상 비용을 상쇄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불리한 점이 있다”며 “많은 중국 기업이 아직 리스크가 헤지되지 못한 달러화 표시 회사채를 빚으로 지고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미국 경제지 포브스는 중국 기업들은 앞으로 1년 안에 만기가 돌아오는 달러화 표시 회사채가 약 1조3000억 달러(약 1563조 원)로, 중국 정부 보유 미국 국채 규모를 웃돌고 있다고 분석했다. 위안화 가치가 떨어지면 그만큼 부채 상환 부담이 커지면서 많은 중국 기업이 디폴트(채무불이행)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
씨티그룹 이코노미스트들은 “달러·위안 환율 7위안이 무너지면 중국증시의 대규모 매도세를 촉발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아서 라우 파인브리지인베스트먼트 신흥시장 채권 부문 공동 대표는 “약세가 위안화는 물론 다른 아시아 통화에도 확산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럴 경우 다른 아시아 기업도 달러화 채권에 대한 상환 비용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