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非)메모리로 불리는 시스템 반도체 사업에서 10년 내 글로벌 1위를 달성하겠다는 청사진을 공개한 것이다.
먼저 삼성전자는 시스템 반도체 사업경쟁력 강화를 위해 2030년까지 국내 연구개발(R&D) 분야에 73조 원, 최첨단 생산 인프라에 60조 원을 투자한다.
대규모 R&D 투자를 통해 국내 시스템 반도체 연구 인력 양성에 기여하는 동시에 생산 시설 확충으로 국내 설비·소재 업체를 포함한 시스템 반도체 생태계 발전에도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또 화성캠퍼스 신규 극자외선(EUV)라인을 활용해 생산량을 늘리고, 국내 신규 라인 투자도 지속 추진할 계획이다. 삼성전자는 시스템 반도체 R&D 및 제조 전문인력도 1만5000명을 채용할 계획이다.
이런 계획이 실행되면 2030년까지 연평균 11조 원의 R&D·시설 투자가 집행되고, 생산량이 늘어나면서 42만 명에 달하는 간접 고용유발 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회사 측은 내다봤다.
삼성전자가 이 같은 대규모 시스템 반도체(비메모리) 투자 계획을 발표한 이유는 D램과 낸드플래시 등 메모리반도체에 치중됐던 반도체 산업 경쟁력을 비메모리 반도체로 확대하기 위해서다.
비메모리반도체는 데이터를 저장하는 데 활용되는 D램과 달리 연산, 논리 작업 등과 같은 정보 처리를 목적으로 제작되는 반도체로 대표적인 제품이 중앙처리장치(CPU)다.
현재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메모리 시장 점유율 1·2위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두 업체 점유율만 60%가 넘는다.
반면 비메모리 시장에서는 3~4% 수준에 그치고 있다. 한국이 반도체 강국이라고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메모리 강국’일 뿐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이 같은 불균형적인 산업구조는 지난 2년간 메모리 반도체의 슈퍼 호황으로 가려져 있었다. 하지만 지난해 말부터 슈퍼 호황이 꺾이면서 불균형적인 산업 구조가 밖으로 드러나고 있다.
특히 삼성전자는 2017년 인텔을 제치고 세계 1위 반도체 기업에 이름을 올렸는데, D램 가격 하락 등 업황이 악화하면서 올해 2위로 다시 내려갔다.
김기남 삼성전자 부회장은 지난달 주주총회에서 “중국이 수년 전부터 정부 주도로 메모리 반도체 사업을 적극 육성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면서 “자만하지 않고 끊임없이 연구개발에 집중하면서 최고의 경쟁력을 유지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중국의 ‘반도체 굴기’가 당초 예상만큼 빠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지만, 대규모 투자에 따른 생산확대는 중장기적으로 시장 전체에 수급부담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결국 반도체 사업에서 지금의 경쟁력을 이어가기 위해선 상대적으로 약한 비메모리 분야를 키울 수밖에 없다. 특히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비메모리의 성장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삼성전자 반도체 매출에서 비메모리가 차지하는 비중은 20%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비메모리 비중은 70%에 달한다. 그만큼 올라갈 수 있는 여력이 더 큰 분야가 바로 비메모리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도 올 초 “메모리반도체 시장의 정체를 극복할 수 있는 지속적인 기술 혁신과 함께 전장용 반도체, 센서, 파운드리 등 시스템 반도체 사업 경쟁력 강화를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업계 관계자는 “향후 5세대 이동통신(5G), 인공지능(AI)이 보편화 되면 장기적으로 비메모리를 중심으로 반도체 시장은 더 성장할 것”이라며 “삼성전자는 높은 메모리 의존도를 줄여 균형 잡힌 성장을 꾀하고, 전체 반도체 시장 패권을 잡기 위해 비메모리 경쟁력 강화에 사활을 걸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의 비메모리 반도체에 대한 높은 관심 역시 삼성전자의 대규모 투자발표를 앞당긴 이유다.
반도체 산업은 국내 수출의 20%를 담당하고 있다. 이들 업황에 따라 국가 경제가 휘청일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로 반도체 업황 부진이 지속되면서 수출 감소세가 지속되고 있다.
이달 1~20일 수출이 8.7% 감소한 가운데 반도체 수출은 24.7%나 격감했다. 이로써 수출이 지난해 12월 이후 5개월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할 가능성이 커졌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달 19일 국무회의에서 “메모리 반도체에 비해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취약한 비메모리 반도체 분야의 경쟁력을 높여 메모리 반도체 편중 현상을 완화하는 방안을 신속히 내놓기 바란다”고 주문했다.
반도체 업계 전문가는 “25년 넘게 정부에서 비메모리 반도체 육성을 외쳤지만 결국 아직 성과를 내지 못했다”며 “기업에 숟가락만 얻기보다는 과거 정책이 왜 실패했는지부터 철저히 연구하고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