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로머 미국 뉴욕대 교수는 빠른 속도로 성장한 한국 경제가 지속 성장하기 위해서는 기존 성장전략을 재편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안정성과 포용성을 수반한 질적인 변화가 있어야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대한상공회의소 지속성장이니셔티브는 27일 남대문 상의회관에서 로머 교수를 초청해 ‘혁신성장, 한국경제가 가야할 길’을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했다.
로머 교수는 2011년부터 미국 뉴욕대학교 스턴경영대학원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기술혁신이 성장을 이끈다는 ‘내생적 성장이론(Endogenous Growth Theory)’으로 2018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했다.
이날 로머 교수는 ‘Sustaining Growth in S. Korea that is Rapid, Stable, and Inclusive’를 주제로 발표를 진행하며 “한국은 지난 수십 년간 고성장, 높지 않은 실업률, 활발한 소득계층 이동성을 바탕으로 매우 빠른 경제발전을 이뤄냈지만 최근 성장 속도가 과거에 비해 현저히 둔화돼 기존 성장전략을 재편하는 것이 불가피해졌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경제의 지속성장은 노동, 자본 같은 양적 투입보다 인적자본, 기술력 같은 질적 변화에 달려있다”면서 “인적자본을 확충하기 위해 교육에 투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국가는 교육시스템을 통해 배출된 인적자본을 최대한 활용해야 할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일을 통해 학습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로머 교수는 학교 등을 통한 교육보다 사회에서 배우는 교육이 더욱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가능한 많은 사람들이 기업 현장에서 지식을 쌓고 공유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며 “이렇게 축적된 지식이 새로운 기술과 사업모델을 탄생시키는 ‘선순환적 성장구조’를 만들어야 혁신을 촉진할 수 있다”고 전했다.
또한 그는 “지속가능한 성장은 안정성(Stability)과 포용성(Inclusiveness)이 수반돼야 한다”고 강조하며 “낮은 실업률, 활발한 소득계층 이동성이 함께 유지될 수 있도록 정부의 지원과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로머 교수는 발표 후 이어진 이종화 고려대 교수와의 대담에서 최근 청년 일자리 부족 문제가 커지고 있는 한국 경제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키우는 동시에 일자리에 대한 개념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미국의 경우 노동력이 늘어났을 때 흡수할 여력이 있고, 사업의 규모가 줄 때 해고가 가능했다”며 “이는 일자리를 찾기가 어렵지 않아 노동자들이 수용할 수 있었고 이는 노동시장이 유연하단 의미”라고 설명했다.
이어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키우는 것이 대책이고 해답일 수 있다”며 “젊은 사람들도 처음 일자리가 평생 일자리가 아니라고 생각해야 하고 이게 가능하려면 노동시장에서 이동이 쉬워야 하고 고용주도 제약을 둬선 안 된다”고 말했다.
아울러 로머 교수는 최근 고용 확대를 위한 정부 주도의 공공 일자리 확대에 대해서는 “일인 척 하는 일이어선 안 된다”고 잘라 말하며 “의무적인 국가 차원의 고용 창출을 하더라도 생산성이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공공 일자리더라도 단순히 고용을 위한 것이 아니라 기술, 협력 등 무언가를 배울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한 일자리 대책에 대해선 “기술은 항상 일자리를 파괴해왔다”면서 “그동안은 교육을 통해 대응했으나, 이젠 학교에서 배우는 게 아닌 새로운 매커니즘에서 사회적 기술을 배워야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로머 교수는 중국의 경제 파장에 따른 한국의 위험 부담에 대해선 “충격을 접했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를 미리 준비해야 한다”면서 “세계 어디서든 충격의 여지는 있고 어느 국가든 최선책은 이러한 충격에 대응할 준비를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세미나에는 600여명의 기업인들이 참석해 세계적 석학이 바라보는 한국경제의 현실과 전망에 대한 높은 관심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