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의회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선포한 국가비상사태를 저지하기 위한 행동에 나섰다. 민주당 하원의원들이 의회 권한을 침해한 트럼프 대통령의 국가비상사태 선포를 무력화하기 위한 결의안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미국 CNBC방송이 2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주 멕시코 국경 장벽 건설에 필요한 예산 확보를 위해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다. 내년도 예산안에 국경장벽 예산 57억 달러를 포함시켜달라고 요구했지만 의회가 여야 합의로 13억7500만 달러만 승인해주자 비상사태를 선포한 것이다. 대통령은 비상사태 선포로 의회 승인을 거치지 않고 예산을 재배정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국방부와 재무부 등에 다른 목적으로 승인된 예산 66억 달러를 끌어와 총 80억 달러를 장벽 건설에 사용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트럼프의 국가비상사태 선포를 두고 의회에 부여된 권한 침해라며 반발해 온 민주당이 결의안 제출로 맞서는 형국이다. 이번 결의안은 호아킨 카스트로 민주당 하원의원이 준비했고 지금까지 92명의 의원이 결의안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카스트로 의원의 결의안은 1976년 제정된 국가긴급사태법에 근거를 두고 있다. 이 법은 대통령이 선포한 국가비상사태에 대한 의회 심의 기능을 부여하고 있다. 또 상원과 하원의 일치된 결의가 있는 경우 대통령이 선포한 국가긴급사태를 끝내도록 규정했다. 대통령의 국가비상사태 선포 권한에 맞서 의회의 견제 권한을 강화해준 것이다.
낸시 펠로시 하원 의장도 힘을 보탰다. 펠로시 의장은 하원에서 대통령의 국가비상사태 선포를 저지하기 위한 결의안에 투표할 것이라고 이날 밝혔다. 또 전날 밤 민주당과 공화당 의원들에게 서한을 보내 카스트로의 결의안을 지지해 줄 것을 요청했다.
펠로시 의장은 “호아킨 카스트로 의원이 작성한 결의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신속히 움직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결의안은 민주당 의원이 다수인 하원을 무난히 통과할 것으로 전망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상원은 53 대 47로 공화당이 다수라 통과를 장담하기 어렵다는 예측이 나온다.
그러나 상원에서 일부 공화당 의원이 이탈해 결의안에 동조할 경우 통과가 가능할 것으로 미 언론들은 보고 있다. 실제로 수전 콜린스 상원의원은 공화당 의원으로서는 처음으로 트럼프의 비상 사태 선서를 거부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말했다. 그녀는 트럼프의 조치가 헌법에 부합하는지 모호한 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결의안이 상하 양원을 통과하면 대통령이 선포한 국가비상사태는 종결된다. 하지만 결의안은 이후 대통령에게 넘어가는데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거부권을 행사하겠다고 공언한 상태다.
대통령의 거부권을 무력화하려면 상·하원이 다시 표결을 거쳐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결의안을 통과시켜야 한다. 그러나 의회가 대통령의 거부권을 기각하기 위해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확보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는 시각이 많다.
정치권뿐만 아니라 시민사회도 움직이고 있다. 대통령이 비상사태를 선포하자 비영리단체 ‘퍼블릭 시티즌’ 등 시민단체들은 예산 전용 금지를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또 캘리포니아주를 중심으로 한 16개 주(州)는 ‘국경장벽 예산 확보 위한 비상사태 선포는 위헌’이라며 역시 소송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