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세데스-벤츠 진화의 출발점은 언제나 E-클래스였다. 7년 안팎의 라이프사이클을 감안했을 때 위아랫급에 다양한 첨단장비가 먼저 장착될 때도 많다. 그러나 진정한 기술력의 완성은 E-클래스에서 이뤄졌다. 그만큼 벤츠 라인업에서 존재의 가치가 컸다.
메르세데스-AMG는 올초 북미오토쇼를 통해 E-클래스의 새로운 영역을 선보였다. 직렬 6기통 3.0리터 터보 엔진을 얹은 E 53 AMG 쿠페와 카브리올레를 내세워 E-클래스의 정점을 갈아치웠다.
본격적인 국내 출시를 앞두고 미국 텍사스 오스틴에서 열린 AMG 글로벌 미디어 시승회에서 새 모델을 먼저 만났다.
변화의 핵심은 배기가스를 이용한 터보와 전동 보조 압축기를 이용한 2개의 터보에 모아진다. 이밖에 엔진과 변속기 사이에는 동그란 모양의 EQ부스터를 꽂아넣어 엔진 출력에 힘을 보탠다. EQ부스터 자체만으로 22마력을 힘을 보탤 수 있다.
모두 합한 시스템 최고출력은 435마력, 최대토크는 배기량 5.5리터에 맞먹는 53.1kgㆍm를 낸다. AMG 스피드 시프트 9단 변속기(TCT)를 맞물려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km 가속까지 4.5초만에 주파한다. 최고속도는 시속 250km에서 안전을 위해 스스로 연료를 차단해 제한한다.
겉모습은 E-클래스 쿠페와 동일하되 보디 곳곳에 AMG를 상징하는 다양한 DNA를 심었다. 앞범퍼 아래쪽 에어 인테이크 홀은 공격적인 A자 형태로 구성했고 사이즈도 마음껏 키웠다. 뒷 테일 머플러 역시 AMG 특유의 트윈 타입으로 바꿨다. 한때 고집스럽게 지켜온 4각 타입 머플러는 초고성능을 위해 남겨놓았다. 최근 등장한 엔트리급 AMG는 모두 동그란 원형 테일 파이프로 마무리돼 있다.
운전석에 앉으면 메르세데스-벤츠의 장점이된 커다란 와이드 듀얼 스크린이 시야를 가득 채운다. 디지털 계기판은 운전자의 취향에 따라 클래식과 스포티로 바꿀 수도 있다.
스티어링 휠 중앙, 즉 운전대의 12시 방향에는 코너워킹에 도움을 주는 빨간 띠를 감았다. 코너를 빠져 나갈 때 어느 지점에서 얼마만큼 핸들링을 더하고 빼야하는지 알려주는 '포인터' 역할을 맡는다. 일반도로에서 큰 효과를 기대하기 보다 이 차의 성격을 뚜렷하게 담고 있는 상징적 아이콘이다.
전날 서킷에서 AMG GT 4도어 쿠페와 치열한 싸움을 벌였던 몸둥아리는 E-클래스 쿠페에 올라앉으니 한없이 편하고 안락했다. 잔뜩 긴장이 필요했던 GT 4도어 쿠페와 달리 여유로움 넘친다. 자꾸만 실내 이곳저곳을 만지작 거리며 버튼을 눌러대고 있다.
시승 코스 중간에서 바꿔 탄 카브리올레는 또 다른 매력이 가득했다. 지붕이 열리는 자동차는 지역마다 부르는 이름이 다르다. 미국에서는 컨버터블, 유럽에선 카브리올레다. 2인승은 로드스터, 스포츠 성향이 강하면 때때로 '스파이더'로 불린다. 한국에서는 어원이 뚜렷하지 않지만 그냥 오픈카다.
E 53 카브리올레는 머플러의 AMG 사운드가 고스란히 운전석까지 타고 올라온다. 일반 쿠페에 비해 카브리올레가 차 무게에서 불리하지만 달리는 재미는 후자가 한결 크다.
한때 V8 엔진으로 점철된 AMG의 고집은 이제 다양한 장르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수퍼카에 버금가는 초고성능 모델은 물론 엔트리급 A-클래스까지 AMG의 손길이 닿고 있다. 선택받은 이들의 전유물이라는 굴레를 벗어나고 있는 것. 사정권에 하나둘 AMG가 들어오면서 '한 대쯤 갖고 싶다'는 생각이 밀려온다.
E 53 AMG 쿠페와 카브리올레에 몸을 얹고 미국 텍사스 오스틴 일대를 누비는 사이, 이상과 현실 사이 어디쯤엔가 몸을 반쯤 걸치고 있었던 AMG는 성큼 사정권에 들어오고 있음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