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세데스-벤츠가 마침내 대놓고 "타도! 포르쉐"를 본격화했다. 반세기 넘게 2도어 쿠페만 고집했던 그들이 4도어 세단과 SUV까지 영토를 확대했기 때문이다.
2009년 포르쉐의 4도어 쿠페 '파나메라'의 등장은 고급차 시장의 판도를 단박에 바꿔버렸다. 틈새 시장인 '2도어 스포츠카'에 집중했던 이들이 4도어로 영토를 확장하면서 전통적인 프리미엄 브랜드 영역을 침범하기 시작했다. 그렇지 않아도 좁아터진 '고급차' 시장의 경쟁이 더욱 치열해진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포르쉐의 진격에 깜짝 놀란 BMW와 아우디 등은 앞다퉈 '세단+쿠페' 모델을 내놓으며 반격에 나섰다. 그러나 상황은 완패였다. BMW는 5와 7시리즈 중간을 메워줄 6시리즈 앞세웠으나 쓴맛을 본채 단종 수순에 접어들었다. 아우디 역시 A7으로 맞섰지만 싸움은 힘겨웠다.
2004년, CLS를 앞세워 세계 최초 '4도어 쿠페'이라는 장르를 개척했던 메르세데스-벤츠는 방법을 달리했다. 치밀한 전략을 앞세워 본격적인 정면 돌파에 나선 것. 세단과 쿠페의 장점을 접목한 일반 모델은 CLS가 담당하고, 그 윗급 시장을 장악한 포르쉐 4도어 세단에 대적할 만한 새 모델 개발에 나섰다. '메르세데스-AMG GT 4도어 쿠페'가 등장한 배경이다.
◇과격한 '그로테스크' 디자인이 최대 매력 = 'AMG GT 4도어 쿠페'는 올초 제네바 모터쇼에 처음 등장했다. 본격적인 출시를 앞두고 열린 글로벌 미디어 시승회는 AMG 최대시장인 미국, 그것도 IT도시로 급부상한 오스틴에서 열렸다.
새 모델은 밑그림이된 2도어 타입의 GT보다 세련미가 넘친다. 과격한 디자인의 GT 디자인을 바탕으로 4도어와 4인승 구성을 앞세워 실용성과 세련미를 더했다. 그렇다고 마냥 얌전한 모습도 아니다. 강렬한 디자인을 품은 프론트그릴은 '그로테스크(Grotesque: 기괴함)'한 분위기를 가득 담고 있다.
언뜻 포르쉐의 경쟁모델보다 차체가 작아보이지만 실제는 다르다. 길이와 너비, 높이를 각각 파나메라보다 2~5cm씩 키웠다. 기어코 숫자 싸움에서 이긴 셈이다.
실내는 E-클래스와 큰 틀에서 동일한 구성을 지녔으되 내용물은 모조리 바꿨다. 곳곳에 AMG를 상징하는 디자인 터치와 갖가지 장비가 가득하다. 버튼 하나만 누르면 뒷 트렁크 리드에 에어 스포일러가 솟구치고, 버튼 하나만 누르면 머플러 사운드까지 우렁차게 바꿀 수 있다.
엔진은 직렬 6기통 3.0리터와 V8 4.0리터 2가지. 직렬 6기통 3.0 엔진을 바탕으로 터보를 얹은 GT 53은 최고출력 435마력을 낸다. 엔진과 변속기 사이에 동그란 EQ부스트를 꽂아넣은 '마일드 하이브리드' 모델이다. 출발부터 엔진 회전력에 힘을 보태는 EQ부스트는 그 자체만으로 출력 22마력을 보탠다. 본격적으로 터보가 작동하기 전까지 추진력을 보태준다. 흡사 '수퍼차저'의 역할인 셈이다.
V8 4.0리터 바이-터보 엔진을 장착한 63 S는 최고출력이 무려 639마력에 달한다. 2개의 터보를 좌우 실린더 중앙에 심어넣어 엔진 균형까지 잡아낸, AMG GT 4도어의 꼭짓점이다.
2가지 모두 메르세데스-벤츠 E-클래스와 CLS, S-클래스를 개발한 MRA 플랫폼을 바탕으로 개발했다. 한 가지 플랫폼을 바탕으로 이처럼 다양한 성격의 다른 차들을 개발할 수 있는 것도 기술력이다.
◇직렬 6기통 3.0 트윈-터보 엔진에 전자식 EQ부스트 덧대 = 시승회는 텍사스 오스틴의 외곽의 산악도로와 고속도로, 1주 5.5km의 서킷 등에서 열렸다. 순서는 일반도로에서 GT 53을, 서킷에서는 고성능 63 S를 경험하게끔 짜여졌다.
오스틴 도심을 빠져나오자 시승코스는 정신없는 오르막과 내리막의 연속이다. 끝이 아득했던 미국의 여느 도로와 딴판이다. 하늘을 바라보며 솟구치듯 달리면, 이내 땅으로 고꾸라지듯 급경사 내리막길이 튀어나오기 일쑤다. 롤러코스터가 따로 없었다.
차 앞뒤 무게배분은 기어코 51대 49를 맞췄다. V8 4.0리터 엔진 탓에 앞쪽이 무거워진 63 S(앞뒤 53:47)보다 코너에서 '뉴트럴 스티어' 성격이 강하다.
GT 53의 3.0리터 엔진은 저속부터 고속까지 꾸준한 파괴력을 뽑아낸다. 엔진 스트로크(92.4mm)가 보어(83.0mm) 길이를 앞서는 이른바 '롱스트로크 엔진' 구성을 지닌 덕이다. 덕분에 엔진 회전수를 무리하게 끌어올리지 않아도 된다. 출발 초기 EQ부스트가 작동하면서 "등짝을 후려치듯" 쏘아대는 힘이 만만치 않다. 2개나 되는 터보가 숨통을 트이기 전까지 조금의 '굼뜸'조차 용납하지 않겠다는 AMG의 처연한 노력이 스며있다.
토크 컨버터 방식의 9단 변속기는 가감속 때 2개씩 기어단수를 바꿔가며 최적의 회전수를 찾아낸다. 바쁘게 그리고 명민하게 기어단수를 찾아가는 모습은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하는 도로에서 차고 넘치는 경쾌함을 뽑아낸다. 제원상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km 가속까지 4.5초면 충분하고 이 상태를 유지하면 최고시속은 285km에 달한다.
기어박스에 장착된 주행모드를 눌러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버튼 하나로 스포츠 또는 스포츠 플러스 모드를 고를 수도 있다. 노멀 모드가 말랑말항한 벤츠 세단의 모습이라면 스포츠 플러스는 단박에 스포츠 세단으로 차 성격을 바꿔버린다. 서스펜션은 탄탄해지고 가속감이 직결식으로 바뀐다. 동시에 배기음도 우렁차게 바뀐다. 버튼을 누를 때마다 얼굴색이 바뀌는 재미에 빠져 계속해서 버튼을 눌러대고 있다.
아직 공식 출시 이전인 만큼 구체적인 국내 판매가격이 공개되지 않았지만 이 정도 장비를 가득담고 있다면 가격 역시 만만치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AMG GT의 가격을 감안했을 때 국내에서는 2억 원 안팎에 가격표가 따라붙을 공산이 크다.
◇좀처럼 끝을 드러내지 않는 최고출력 639마력 = 오스틴 인근의 레이스 트랙 '서킷오브 아메리카'에 도착하니 GT 4도어 쿠페의 정점인 63 S가 기다리고 있다. 최고출력 639마력에, 최대토크는 무려 91.8kgㆍm에 달한다. 토크만 따져보면 일반도로를 달려온 53의 두 배에 가깝다. 0→시속 100km 가속은 수퍼카에 버금가는 3.2초, 범접하기 어려운 최고속도는 무려 315km에 달한다.
1주 5.5km의 서킷은 시작부터 간담을 서늘케 한다. 패독에서 으르렁거리는 63 S를 몰고 나와 직선로에 빠르게 뛰어들었지만 이내 화들짝 놀라 가속페달에서 발을 뗐다. 직선로의 끝은 첫 번째 코너가 보이지 않을만큼 가파른 오르막에 막혀 있었다.
코너와 코너가 반복될 때마다 최고출력 639마력의 위력은 여지없이 드러났다. 듀얼 클러치 방식의 AMG 스피드 시프트 9단 MCT는 600마력이 넘는 출력을 남김없이 바퀴까지 전달한다. 쫀득하기로 이름난 미쉐린 파일럿스포츠4S 타이어 역시 600마력이 넘는 출력을 끝까지 받아냈다. 대견할 정도였다.
코너의 정점을 빠져나오면, 눈 앞에 보이는 다음 코너까지 단박에 차를 내던질 수 있다. 아무리 과격하게 차를 내몰아도 네바퀴굴림 4매틱 플러스 시스템은 노면을 끈덕지게 붙잡고 놔주지 않는다. 극단적인 횡G가 쏟아는 동안에도 운전대 역시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었다.
날카롭게 코너와 코너의 정점을 잘라먹는 사이, 시승 서킷에 조금씩 익숙해졌다. 그러나 주행이 반복될수록 63 S가 조금씩 버거워지기 시작했다. 최고출력 639마력은 어설픈 레이서에게 좀처럼 한계를 드러내지 않았다. 그 끝을 경험해보겠다며 죽어라 내달리는 사이 중력가속도가 차곡차곡 쌓이며 온 몸을 짓눌러댔다.
그렇게 하루 8시간 AMG GT 4도어를 체감하는 사이 어설펐던 우려가 말끔하게 사라졌다. 메르세데스-벤츠는 세계 최초 '4도어+쿠페' 콘셉트를 선보인 CLS를 계속 유지하면서 동일한 '4도어+쿠페' 콘셉트를 지닌 AMG GT 4도어를 새롭게 추가했다.
결론적으로 두 모델은 같은 명제를 지녔으되 성격은 극명하게 갈렸다. CLS가 스타일리시한 '쿠페' 타입의 세단을 지향했다면 AMG GT 4도어는 고성능을 지향하는 스포츠 쿠페로 역할을 충직하게 해내고 있었다. 물론 여기에는 '포르쉐 파나메라 킬러'라는 숙명과도 같은 임무도 주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