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기한 종료로 사라졌던 '기업구조조정 촉진법(기촉법)'이 8월 임시국회에서 부활할 전망이다. 금융당국은 정치권에서 이견이 없는 만큼 이르면 이달 임시국회에서 법안 처리가 급물살을 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유동성 위기에 직면한 부실기업에 신규자금을 넣어 숨통을 트이게 할 방법은 기촉법밖에 없다는 것이다.
◇국회만 바라보는 금융당국… 신용평가 개입 어려워 =금융감독원은 매년 8월 대기업 신용평가 결과를 발표해 왔다. 이번에는 잠잠하다.
기촉법에 따라 시중은행들은 통상 4~7월 신용공여액 500억 원 이상인 대기업 가운데 평가 대상을 정해 신용위험을 평가해왔다. 정상기업(A등급)부터 경영정상화 가능성 없는 기업(D등급)까지 총 4개 등급으로 나눈다. 부실징후기업(C등급)은 워크아웃이나 자율협약 등으로 살길을 모색한다. 경영 정상화가 어려운 기업들은 법원 회생절차로 들어간다.
하지만 법적 근거가 사라지면서 금융당국이 구조조정에 개입하기 어려워졌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경영평가 기간에 법이 사라져서 공식적으로 집계해 발표하는 것이 애매해졌다”고 말했다. 지난달부터 시작한 중소기업 신용평가 역시 재입법되지 않는 이상 같은 상황이 될 수 있다.
◇“신규 자금 투입 쉬운 기촉법 필요“ =기촉법은 워크아웃의 법적 근거다. 워크아웃은 채권금융기관이 기업 신용위험평가를 한 뒤 부실기업을 구조조정하는 제도다. 6월 30일 법이 만료되면서 법원 회생절차와 채권금융기관 자율협약만 남았다.
워크아웃 장점은 부실기업이 영업을 계속하면서 추가 자금을 지원받는다는 점이다. 중소·중견기업은 일시적으로 현금 흐름이 막혀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기촉법이 없으면 신규 자금 투입만으로 살아날 기업들을 ‘한계상황(법원 회생절차)’으로 몬다는 것이 금융당국 판단이다. 기업이 회생절차에 들어가면 은행은 빌려준 돈 가운데 일부를 대손충당금으로 쌓는다. 대손 처리를 한 뒤에 신규자금을 대기는 쉽지 않다고 한다. 실제 최근 3년간 NH농협은행과 우리·KB국민·신한·KEB하나은행 등 시중은행 5곳이 회생절차 진행 중인 기업에 준 돈은 0원이다.
건설·조선 등은 특히 회생절차에 들어가면 기존 계약이 해지될 수 있다. 상거래 채권(사업상 발생한 물품대금)도 채무조정 대상이라 중소협력 업체까지 경영난이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한다.
하지만 기촉법 없이 자율 구조조정을 하기는 쉽지 않다. 기촉법은 채권금융기관뿐만 아니라 금융채권자를 대상으로 한다. 금융채권자의 4분의 3이 동의하면 공동 구조조정이 가능하다. 반면 기촉법을 대체하는 자율협약에는 채권금융기관만 참여한다. 이마저 100% 동의가 필요하다.
업계에서는 협약 대상이 아닌 채권자가 자율협약에 들어와 무임승차할 가능성을 우려한다. 금융당국의 한 관계자는 “이른바 ‘프리라이더(무임승차자) 문제가 생긴다”며 “금융기관이 아닌 기타 채권자들이 ‘내 돈은 갚으라’고 하면 신규 자금이 구조조정이 아닌 기존 채권자 돈을 갚는 데 쓰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금융권·기업도 “기촉법 재입법” 한목소리… ‘관치금융’ 비판도 =금융업계와 경제계도 기촉법 재입법을 촉구하고 있다. 은행연합회와 금융투자협회·생명보험협회·손해보험협회·여신금융협회·저축은행중앙회 등 6개 금융협회는 20일 “기촉법은 구조조정 기업들이 신규자금을 지원받고, 영업 기반을 보존해 경영 정상화 가능성을 높일 적합한 제도”라며 조속한 입법을 국회에 건의했다.
대한상공회의소도 중소기업중앙회와 한국중견기업연합회와 함께 22일 국회 정무위원회에 ‘기촉법 재입법에 대한 경제계 의견’을 냈다. 경제계는 “최근 이자비용도 감당하지 못하는 한계기업이 증가하는 가운데 워크아웃으로 경영정상화가 가능한 중소기업이 기촉법 부재로 파산할 가능성이 커졌다”고 주장했다.
한편 기촉법 부활이 금융당국이 암암리에 은행에 압력을 행사하는 관치금융 수단으로 또 다사 전락할 수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여전히 높다. 회생절차에 능통한 한 법조인은 “워크아웃하면서 시간을 질질 끌고 돈을 소진해서 회생절차에 들어간다”고 지적했다. 애초 워크아웃 중심으로 짜여진 구조조정 제도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