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현지시간) 일본 도쿄에서 열린 ‘제24회 아시아의 미래’ 컨퍼런스에 참석한 마하티르 총리는 기자회견에서 “말레이시아처럼 작은 나라는 자유무역 세계에서 경쟁하는 것이 힘들다”며 “개발도상국에 특권을 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고 CNBC 등 외신이 보도했다.
마하티르 신임 총리는 나집 라작 전 정권이 쌓아둔 막대한 국가 부채와 경제적 폐단을 청산해야 하는 막대한 임무를 떠안았다. 새 정부에 따르면 현재 말레이시아의 국가 부채는 국내총생산(GDP)의 80% 수준에 육박하는 1조 링깃(약 271조 원) 규모다. 마하티르 총리는 부채 감축을 위해 새로운 과세안을 도입하고, 펀드를 개설해 국민을 상대로 금 모으기 운동을 벌이는 등 국내 경제 개혁을 시도하는 한편 ‘보호무역주의’를 또 다른 도구로 꺼내 들었다.
그는 “대부분 국가는 자유무역과 관련해 말만 앞서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규제를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독일이 말레이시아에 수많은 자동차를 수출할 때, 말레이시아는 단 한 대도 수출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말레이시아는 자동차 산업을 키우고 있지만 선진국 시장으로 진입하는 데 까다로운 조건들 때문에 벽에 부딪힌다는 것이다.
이날 마하티르 총리는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을 재검토하겠다고도 밝혔다. 현재 말레이시아의 경제 상황을 고려했을 때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그는 앞서 TPP를 탈퇴한 미국을 거론하며 “선진국조차 자유무역이 환영할 만한 것이 아니란 것을 알고 있다”고 꼬집었다.
말레이시아는 국가 부채를 줄이기 위해 전 정권이 추진한 중국과 싱가포르와의 프로젝트도 잇따라 중단했다. 새 정부는 지난달 말 말레이시아-싱가포르 고속철(HSR) 사업을 취소했다. 이는 현대판 실크로드인 중국의 ‘일대일로’ 사업과도 연관이 깊어 중국에도 악재다. 여기에 중국과 140억 달러 규모의 동부해안철도(ECRL) 프로젝트도 중단했다.
말레이시아의 이런 행보로 중국과 싱가포르와의 관계가 삐걱대고 있지만, 마하티르 총리는 전 정권이 넘겨준 국가 부채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는 태도다.
말레이시아 유권자들은 지난달 10일 나집 전 총리가 국가기금을 둘러싼 대규모 부정부패 스캔들에 휘말린 것에 분노해 61년 만에 정권 교체를 이뤄냈다. 나집 전 총리는 2015년 국부펀드 말레이시아개발유한공사(1MDB)를 통해 최소 45억 달러(약 4조 8300억 원)를 횡령하고 비자금을 조성한 의혹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