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그룹이 전사적으로 준비했던 지배구조 개편안이 결국 원점으로 돌아갔습니다. 백지상태에서 새로운 개편안을 짜는 것이 아닌, 종전의 개편안을 보완하고 수정하겠다고 합니다.
이번 지배구조 개편안은 재계는 물론 정부 차원에서도 환영을 받았습니다. 순환출자구조를 끊어내고 일감 몰아주기 논란에서 벗어날 수 있는 대안이었으니까요. 나아가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서 오너가의 당위성도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정몽구 회장을 비롯한 대주주가 1조 원이 훌쩍 넘는 세금을 기꺼이 내겠다는 의지를 내비쳤기 때문이지요.
그렇게 지배구조 개편안은 순조롭게 진행됐습니다. 엘리엇이 지분 보유를 밝히며 “이사회에 개입하겠다”는 의지를 보였음에도 그룹에서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정몽구 회장을 비롯한 계열사가 우호지분을 30% 넘게 쥐고 있었으니, 고작 1.5% 주주인 엘리엇의 반기가 문제될 것이 없다고 판단했던 것이지요.
엘리엇의 이 같은 ‘반기’는 예견했던 일이기도 했습니다. 2015년 이후 이들이 공격 대상으로 삼은 아시아 및 유럽 기업들 대부분 세 가지 공통점을 지녔는데요. 지배구조 개편 시기에 놓인 기업 가운데 오너의 지분이 낮은, 거기에 최근 몇 해 사이 어닝쇼크를 겪으며 실적 부진을 겪어온 기업들이었습니다.
현대차그룹은 이를 포함한 시장의 반응에 원칙과 원론적인 대응을 유지했습니다. 그러다 막판에 이르러 코너에 몰리자 과격한 모습을 드러냈는데요. 글래스루이스와 ISS 등 글로벌 유력 의결권 자문기관이 잇따라 현대모비스의 분할합병에 대해 “주주 권익에 반한다”며 반대 입장을 내놓을 때였습니다. 그룹 측은 “유감” 차원을 넘어 과격한 반응을 담아 공식입장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한때 현대건설 M&A 때 우선협상 대상자로 현대그룹이 선정됐을 때에도 이런 과격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이번 지배구조 개편안의 무산은 대기업 계열사와 오너의 집단 논리가 특정 계열사 주주의 이해관계와 충돌하면서 불거졌습니다. 주주를 중심으로 한 자본주의가 성숙하면서 주주들이 ‘설득의 대상’이 아닌 ‘소통의 대상’으로 떠올랐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남았습니다.
더 큰 문제는 또 있습니다. 위기의식이 몰려오자 어느 때보다 적극적이었던 현대차그룹의 주주환원책이 주초 취소 직후 가차 없이 수면 아래로 사라졌습니다. 그토록 절박하게 외쳤던 주주와의 소통이 결국 주주를 위한 것이 아닌, 지배구조 개편과 오너가를 위한 것이었음을 스스로 입증해 버린 셈이지요.
이제 스스로 돌아볼 시간이 생겼습니다. 이제 주주만이 아닌, 현대차 고객과의 소통에도 주력해야 할 때입니다. 고객은 언제든 주주가 될 수 있기 때문이지요. 현대차그룹이 전사적으로 주주 설득에 나선다는 이야기는 들어봤지만, 이들이 이토록 절박하게 ‘불만 가득한 고객’을 설득하려 노력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