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통과 뚜껑, 펜촉까지 티타늄으로 만들었고 몸통 중앙엔 이보다 더 특별한 재료인 ‘아폴로 15호가 수집한 달의 먼지’라고 쓰인 금속판이 붙어 있었다. 지금이야 별일도 아니지만, 46년 전에 티타늄으로 만년필을 만들 수 있는 회사는 파커가 유일했다.
당시 파커사는 뭐든 할 수 있는 최고의 회사였다. 침몰한 스페인 보물선에서 건진 은화로 1965년 세계 최초의 한정판 만년필을 내놓았고, 1968년엔 미국인 최초로 지구궤도를 돈 우주비행사 존 글렌이 탔던 로켓의 일부로 볼펜과 만년필을 만들어 선보였다. 파커사는 쉽게 구할 수 없는 특별한 재질로 물건을 만들어 내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고, 고객들은 파커사의 제품이라면 척척 사주는 시대였다.
쉽게 구할 수 없는 특별한 재질로 만년필을 만든 것은 파커사가 1960년대 시작했지만 금과 은처럼 전통적으로 귀한 재료로 만년필을 만든 것은 언제부터일까? 1883년 실용적인 최초의 만년필은 경화(硬化)고무, 하드러버(hard rubber), 에보이나이트 등으로 불리는 재질이었다. 경화고무는 산성 또는 알칼리성인 잉크에 아무런 문제가 없고 열과 충격에도 강해 만년필을 만드는 데 최적(最適)이었다.
하지만 경화고무는 검정과 빨강 등으로 색상이 단조로워 장신구(裝身具)이기도 한 만년필의 다른 얼굴을 채우기엔 부족했다. 그래서 제조사들은 경화고무에 금과 은을 씌우고 전복 껍데기이나 진주조개의 껍데기를 붙여 화려함을 더했다. 이렇게 귀금속 등으로 치장(治粧)한 전성기는 1890년대부터 제1차 세계대전(1914~1918년) 직전까지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만년필의 황금기로 불리는 그다음 시기엔 오히려 황금 만년필을 보기 어려웠다.
이렇듯 만년필은 장신구라는 다른 얼굴 때문에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모든 방법이 동원되었다. 1980년대엔 도저히 재질로 사용할 수 없을 것 같은 재료, 나무로도 만들기 시작했다. 몸체로 쓸 수 있는 나무는 담배 파이프로 잘 만들어지는 브라이어(briar), 단풍나무, 올리브, 흑단(黑檀) 등이다.
다음 달이면 싱가포르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북미정상회담이 열린다. 이 정상회담은 닉슨의 핑퐁 외교와 비교되기도 하는데, 닉슨 대통령처럼 트럼프 대통령도 특별한 만년필을 가지고 갈까? 필기구가 뭐가 되든 좋은 소식이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