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유럽 국가들은 1989년 공산주의가 붕괴한 뒤 저임금을 강점으로 내세워 유럽의 제조업 허브로 거듭났다. 최근 몇 년간 평균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5%에 이르며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세계 경제 회복을 주도했다. 그런데 동유럽 국가들은 저출산·고령화와 고용 시장 호조가 맞물려 인력난에 빠지게 됐다. 경제 호황을 구가하고 있는 체코의 실업률은 2.4%로 구인난이 심각한 일본과 비슷하다.
동유럽의 강점으로 여겨졌던 ‘저임금’도 옛말이다. 체코 근로자의 월 평균 임금은 전년보다 8% 상승한 1160유로(약 153만 원)를 기록했다. 이는 독일 근로자의 평균 임금의 3분의 1 수준이기는 하나 상승세가 계속돼 서유럽과의 격차를 빠르게 좁힐 전망이다.
체코의 병원용 침대 제조업체 리넷은 최근 급증하는 주문량에 대응하고자 체코 전역에 대대적인 신입 직원 채용 공고를 냈다. 그러나 높은 임금 인상률, 주택 보조금 제공 등 좋은 조건을 홍보해도 충분한 인력을 구할 수 없었다. 리넷의 지브넥 프로릭 창업자는 “할 수 있는 한 인력을 기계로 대체하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체코산업연맹의 자로슬라브 하낙 회장은 “구인난은 체코 제조업의 성장에 제동을 걸고 있다”며 “기업들이 자동화와 인공지능(AI) 도입을 확대하지 않으면 그들은 사라지게 될지 모른다”고 진단했다.
체코는 이미 로봇에서 답을 찾고 있다. 국제로봇연맹(IFR)에 따르면 2010~2015년 사이 체코의 자동화율은 40% 향상했다. 작년 기준으로 체코 근로자 1만 명당 로봇 설치 규모는 101대다. 전 세계 평균인 74대를 크게 웃도는 수준이다. 유럽에서 로봇 자동화 시스템 도입에 가장 앞선 독일은 309대다.
전자장치 제조업체 엘코EP는 생산량의 70%가 이미 자동화돼 있다고 밝혔다. 이 회사는 수년 내에 거의 완벽한 자동화 구축을 목표로 삼았다. 엘코EP의 지리 코넨시 CEO는 “인력을 연구 개발에 집중시켰다”며 “초기에 자동화에 투자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고사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폭스바겐그룹의 체코 자회사인 스코다는 지난달 “저출산·고령화 문제와 임금 압박에 대처하는 방편으로 자동화 확충 속도를 높일 것”이라고 선언했다. 프랑스 제조업체 슈나이더일렉트릭의 보단 도브하닉 프라하 사업부 대표도 “인력 부족은 수년간 계속될 것”이라며 “인력을 찾지 못하면 그들을 대신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기업들은 각 나라가 더 많은 외국인 근로자들을 받아들이면 구인난이 해결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그러나 동유럽 각국에 보수 정권이 들어서면서 이민 장벽은 높아지는 추세다. 외국인 취업 비자 심사도 엄격해지고 있다. 체코는 지난해 10월 총선에서 반난민 성향의 긍정당이 전체 200석 중 78석을 차지하며 제1당으로 올라섰다. 지난 8일 총선을 치른 헝가리 역시 반난민 기치를 내건 빅토르 오르반 총리가 3연임에 성공했다.
한편 경기 호황기가 지나고 후퇴기가 도래하면 급속한 자동화가 실업난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체코공과대학의 마이클 피초섹 AI 센터 소장은 “일단 로봇을 도입하면 다시 사람으로 교체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체코 노동조합도 목소리를 냈다. 체코노동조합연맹의 조세프 스트레듈라 위원장은 “기업 경영진, 정치인 등이 4차 산업 혁명에 책임 있게 행동하지 않는다면 더 많은 일자리가 위협받을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