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역사상 최초의 여성 총리인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최장수 총리’라는 새로운 타이틀을 거머쥐게 됐다.
24일(현지시간) 치러진 독일 총선에서 메르켈이 이끄는 기독민주당(CDU)과 기독사회당(CSU) 연합이 득표율 1위를 차지해 메르켈 총리는 4연임에 성공했다. 이로써 12년째 총리직을 수행 중인 메르켈은 ‘4기, 16년 장수 총리’에 등극하게 됐다.
그는 12년 간 냉정함과 결단력을 주 무기로 조용한 카리스마를 선보였다. 남성 위주의 독일 정치계에서 그는 때론 침묵을, 때론 결단력을 보이며 정치적 입지를 다졌다. 정책적인 면에서는 유연성을 보였다. 원전, 난민 정책 등에서 보수적인 색채를 포기하고 진보적인 정치 성향으로 유권자들을 끌어들였다.
다만 4연임에는 성공했으나 이번 총선에서 메르켈이 이끄는 CDU·CSU 연합의 득표율은 예상보다 저조했다. 1주일 전 여론조사에서 CDU·CSU 연합의 지지율은 36%로 나타났는데, 실제 최종 득표율은 32.7~33.3%로 전망됐다. 동시에 메르켈이 이끄는 CDU·CSU 연합의 이번 득표율은 메르켈의 4번의 선거 중에서 가장 낮은 수치였다.
메르켈 총리는 이날 베를린에 있는 CDU 당사에서 승리 소감을 밝혔다. 그는 “더 좋은 결과 희망했었다”며 득표율에 아쉬움을 드러냈다. 또 “입법에서 매우 도전적인 시기를 맞게 됐다”며 AfD의 득세를 의식한 발언을 했다. 그는 “정부는 경제, 안보, 이민 등의 문제에 주력할 것”이라며 “오늘날 우리가 맡은 책무를 우리의 동반자들과 묵묵히 수행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메르켈을 기다리는 것이 꽃길 만은 아니다.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이후 균열된 EU를 추스르고 난민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등 어려운 과제가 산적한 탓이다. 특히 극우 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의회에 입성하면서 난민 정책이 어떤 변화를 맞게 될지 시선이 쏠리고 있다. AfD는 반(反) 난민, 반 이슬람 정당으로서의 정체성을 표방한다.
메르켈은 또 장기 집권에 따른 식상함도 극복해야 한다. 연정 구성이 그 돌파구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현재 사회민주당의 마르틴 슐츠 대표는 “선거 결과 유권자들은 우리에게 야당의 역할을 부여했다”며 사실상 연정을 거부했다. 남은 선택지는 자유민주당(FDP), 녹색당과 손을 잡는 것이다. 자민당과 녹색당은 득표율에서 각각 4위, 5위를 차지했다. CDU·CSU 연합과 자민당, 녹색당은 각각 상징 색이 검정, 노랑, 초록이어서 자메이카 국가를 연상케 한다. 이 때문에 ‘자메이카 연정’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지난 2013년 선거에서 연정 협상은 2개월 정도 소요돼 정식 연정 구성은 12월 중순까지 늦춰졌다. 이번 연정 협상은 그때보다 더 장기화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관측했다.
한편 이번 총선에서 13.2~13.4%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제3 정당으로 의회 입성에 성공한 AfD는 의회 631석 중 약 60석을 차지할 것으로 관측됐다. 이 당은 2013년 창당 4년 반 만에 의회 진출을 확정했다. AfD의 알렉산더 가울란트 공동 대표는 출구조사 발표 뒤 “우리는 국가를 변화시킬 것”이라며 “메르켈 총리를 쫓아내겠다”고 엄포를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