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산유국이자 주요 석유 제품 공급 거점인 미국이 허리케인에 치명상을 입으면서 이미 원유와 휘발유 가격이 들썩이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허리케인의 영향이 여기에 머무르지 않고, 수급에 직접적으로 관계가 없어보이는 귀금속과 비철금속 등 다른 원자재에도 영향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7일 보도했다.
지난달 25일 대형 허리케인 하비가 미국 남부 텍사스 해안을 강타하면서 홍수가 발생했다. 해안에 집중된 정유업체의 가동이 중단되면서 정제가 밀릴 것이라는 관측에 따라 뉴욕시장에서 휘발유 선물 가격이 상승해 한때 2년 2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반대로 원유 가격은 과잉인 재고 부담에 배럴당 45달러 대까지 밀렸다.
이 틈에 최고치를 기록한 게 자동차 배출가스 정화 촉매에 사용되는 귀금속 팔라듐이었다. 1일 뉴욕 시장에서 팔라듐 가격은 온스당 980달러로 직전 최저점을 찍은 5월 하순에 비해 30% 정도 뛰며 약 16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한 전문가는 “홍수에 의해 많은 자동차가 수해를 입어 신규 구매가 늘어날 것이라는 관측이 강해진 탓”이라고 분석했다.
그런 와중에도 금값은 떨어졌다. 뉴욕 시장에서 금 선물 가격은 6일 온스당 1339달러로 내려앉았다. 이는 1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던 전날 상황에서 크게 반전돼 0.4% 하락한 가격이다. 6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연방 정부의 부채 한도 증액 시한을 3개월간 연장하기로 의회 지도부와 합의했다고 발언, 디폴트(채무 불이행) 우려가 해소돼 미국 정치 리스크가 후퇴한 것이 배경에 있다. 자난달 말까지만 해도 트럼프 대통령이 “멕시코와의 국경 장벽 건설 예산을 위해 정부 폐쇄도 불사하겠다”고 발언하는 등 불확실성이 감돌고 있었지만 허리케인 피해 복구 예산을 담은 잠정 예산 확보 때문에 의회가 부채 한도 증액 시한 연기를 합의하는데 수월했다는 분석이다.
새로운 대형 허리케인 ‘어마’의 접근도 세계 상품 시세에 파란 요인이 되고 있다. 어마는 8일께 미국 남동부 플로리다 주에 접근할 것으로 보인다. 플로리다 주는 텍사스 만큼 정제 시설이 집중돼 있지 않아 하비 때처럼 원유 시장에 직접적인 영향은 제한된다. 그러나 이 지역은 인구가 많아 석유 제품 수요가 침체돼 유가에 하락 압력을 가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잇단 허리케인 피해 규모에 따라서는 재해 후 대규모 인프라 정비가 필요할 것이라며 이는 구리 등 비철금속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비철금속 가격은 올여름부터 계속 상승해 현재는 최고가 권에서 일진일퇴가 계속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허리케인 피해를 계기로 한 단계 더 뛰어오를 것이란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또한 태풍의 진로에 따라서는 곡물 운송에 지장을 초래해 곡물 가격을 끌어올릴 수도 있다.
전 세계 상품 관계자들이 미국의 허리케인 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