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8일(현지시간) 실시되는 영국 조기 총선을 나흘 앞두고 테리사 메이 총리가 그린 여당의 압승 시나리오에 차질이 생기고 있다.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야당인 노동당이 맹추격하며 집권 보수당과의 차이를 급격히 줄이고 있다. 이런 가운데 조기 총선을 닷새 앞둔 3일 런던에서 테러가 발생했다. 3월 이후 영국에서만 세 번째 테러로, 정부의 테러 대처 능력에 대한 비판이 고조되며 총선 연기 여론이 거세지고 있다. 결국 주요 정당들은 4일 하루 총선 유세를 중단하기로 했다.
AFP통신 등에 따르면 보수당 대변인은 “보수당은 오늘 전국 유세를 중단한다”며 “우리는 하루가 지나고 테러의 세부 사항이 드러날 때까지 (유세 재개를) 중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노동당도 이날 하루 선거 유세 중단 의사를 전했다. 제레미 코빈 노동당 대표는 “노동당은 다른 정당들과 논의한 결과 오늘 저녁까지 전국 유세를 중단할 것”이라며 “사망한 이들과 부상으로 고통 받는 이들을 위한 존경의 표시”라고 말했다.
3일 런던 시내의 런던브리지와 인근 버러마켓에서 발생한 차량·흉기 테러로 6명이 사망했다고 런던 경찰이 발표했다. 용의자 3명은 현장에서 사살된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 등은 이런 경찰 발표 후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에 ‘총선을 연기해야 한다’는 청원이 속속 올라오고 있다고 전했다.
이런 상황은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다. 이번 총선은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협상 개시를 앞두고 메이 총리가 던진 승부수였다. 메이 총리 입장에서는 브렉시트 주도권을 잡기 위해 총선 압승이 절실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총선에서 보수당이 의석을 크게 늘리지 못하면 구심력이 흔들려 브렉시트 협상에도 영향이 불가피하다는 게 중론이다.
보수당은 현재 하원 650석 중 330을 확보해 과반수를 약간 넘는 상태로, 의회를 안전히 장악하지 못하고 있다. 메이 총리는 브렉시트 협상을 진행하면서 정권 기반을 강화하기 위해 지난 4월 중순에 조기 총선을 결정했다.
EU 단일 시장에서 완전 철수 등 하드 브렉시트를 내건 메이 총리는 지난해 국민투표에서 영국의 EU 탈퇴를 지지한 유권자들을 중심으로 표심을 확장할 방침이다. 총선에서 보수당이 의석 수를 늘리고 단독 과반수를 유지해 승리한다는 것이 현재의 메인 시나리오다.
그러나 보수당의 압승 가능성에 대해선 총선이 임박한 지금에 와서는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최근 발표된 각종 여론조사에서 노동당과 보수당의 지지율이 별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보수당과 노동당의 지지율 격차는 10%포인트대로 1개월 전 조사 때의 거의 절반 수준으로 축소했다. 정권 공약에 담은 사회 보장 정책을 둘러싸고 메이의 입장에 반대하는 지지자가 늘어난 영향으로 풀이된다.
메이 총리가 원래 2020년 예정인 총선을 앞당긴 건 4월 중순 시점에서 보수당이 크게 앞섰기 때문이다. 총선을 치러도 야당 전체를 80~100석 이상 앞설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이었다. 하지만 예상을 깨고 야당으로 표심이 옮겨가면서 낙관만은 할 수 없게 됐다.
현 시점에서 마지노선은 현 보유 의석에서 약 20석을 늘리고, 야당 전체 의석을 50석 정도 넘어설 수 있는지 여부다. 당초 기대에는 못미치지만 현재로선 이마저도 불확실한 상황이다. 이렇게 되면 총선을 앞당겼다는 데에 의미를 두게 되는 정도다.
반대로 보수당이 확보하는 의석 수가 현재 갖고 있는 수에서 크게 변함이 없이, 겨우 과반수만 유지하게 되면 메이 총리는 운신의 폭이 좁아진다. 여당 내에서 비판이 높아져 메이 총리의 구심력이 떨어지게 된다.
보수당에는 EU와의 관계를 중시해 소프트 브렉시트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강한데, 메이 총리의 지도력에 의구심이 생기면 여당에서 브렉시트 정책이 흔들릴 우려가 있다. 브렉시트 협상 시한은 2019년 3월이나 승인 절차 등을 고려하면 실질적으로는 더 짧다. 영국 정부 내에서 의견 취합이 안되면 EU와 새로운 무역 협정에 합의하지 못하는 사태도 일어날 수 있다.
현재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여당이 패배해 과반의석이 무너질 가능성도 거론된다. 여론조사 기관 유가브(YouGov)는 5월말 보수당이 20의석을 줄여 과반의석을 잃을 것으로 예상해 충격을 줬다. 이게 현실이 되면 하드 브렉시트를 호소하는 보수당은 적절한 연정 상대를 찾지 못해 정권 유지가 곤란해진다. 최악의 경우 메이 총리의 사퇴 문제로 발전할 가능성도 높다.
2일 영국 BBC방송에 출연한 메이 총리는 유권자들로부터 “총선 실시 후회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고 난감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