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화폐에 밀려나는 전통 화폐들...‘캐시리스 사회’ 성큼

입력 2017-05-25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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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는 2015년 아일랜드의 한 대학 강연에서 “다음 세대 아이들은 돈이 뭔지 모르게 될 것”이라며 현금 종말론을 펼쳤다. 핀테크(금융+기술)의 발달로 현금을 이용하지 않는 시대가 올 것을 예견한 것이다. 그때만 해도 대부분의 사람은 반신반의했다. ‘과연 그런 시대가 올까...’

그로부터 2년 가량이 흐른 지금, 비트코인 같은 가상화폐와 전자지갑 사용이 활발해지면서 실제 동전이나 지폐 같은 전통 화폐들이 설 자리가 점점 좁아지고 있다. 각국 중앙은행과 정부가 이런 현실을 감안해 지폐 축소를 서두르면서 ‘캐시리스 사회(cashless society)’가 앞당겨지는 형국이다.

일본에서는 최근 지폐 1만엔권 폐지론이 거세게 일고 있다. 세계적으로 현금이 탈세 등 비리의 온상이 되고 있다는 점과 마이너스 금리 정책으로 장롱예금이 늘고 있다는 점에서다. 결정적으로 1만엔권 폐지론에 불을 붙인 건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교수의 저서 ‘현금의 저주(The Curse of Cash)’다. 올봄 일본은행(BoJ) 내부에서 이 책이 화제가 되면서 1만엔권 폐지를 진지하게 고민하게 된 것이다. 로고프 교수는 이 책에서 탈세와 범죄행위를 막기 위한 방법으로 고액권 화폐의 폐지를 제안했다. 고액권을 점진적으로 폐지해야 정당하게 현금을 보유하고 있는 사람들을 부당하게 차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폐지론이 일지 않더라도 이미 일본에서는 현금의 존재감이 미미해지고 있다. 다이이치생명경제연구소에 따르면 지폐 발행 잔고는 4월 현재 약 101조 엔. 2차원 완화 직후인 2013년 4월보다 20%나 늘었다. 지폐 발행 잔고의 93%를 1만 엔권이 차지한다. 다이이치생명경제연구소는 현금 중 40조 엔 이상이 장롱에서 잠자고 있다고 분석했다. 대부분이 지하경제에서 비롯된 것이다.

여기다 일본 산업계와 금융계가 비트코인과 같은 가상화폐 상용화에 박차를 가하고, 정부가 가상화폐 활성화를 지원하면서 현금 없는 사회를 앞당기는 분위기다.

앞서 유럽중앙은행(ECB)은 이달 초, 2018년 말 500유로 지폐 발행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지폐가 돈 세탁에 악용되고 있다는 우려가 높아지면서 테러와 범죄 단체의 자금줄을 끊겠다는 목적에서다. 하지만 500유로 지폐 발행을 중단하기로 한 진정한 목적은 고액거래에서 현금을 배제하고, 장기적으로는 현금을 없애려는 원대한 계획의 첫 걸음이라고 전문가들은 해석하고 있다. 유럽에서는 이미 현금 고액거래를 제한하는 나라가 적지 않다. 스웨덴 덴마크 등 북유럽 국가에서는 현금 사용이 급속도로 줄어들고 있다. 신용카드나 체크카드로 결제하는 게 일반화하는 가운데 스웨덴에서는 시중의 현금이 계속 감소하고 있다.

인도도 작년 11월 부패 척결을 이유로 화폐 개혁을 단행했다. 전체 화폐 유통 물량의 86%를 차지하는 500루피와 1000루피 등 고액권 화폐 2종을 없애고 새로운 500루피와 2000루피 화폐로 교환하도록 했다. 유례없는 과감한 화폐개혁에 처음엔 혼란이 극심했지만 화폐개혁 이후 뜻밖에도 모바일 결제 규모가 2배 이상 늘어나며 현금은 물론 카드없는 사회가 머지않았음을 시사했다.

전통 화폐의 영역을 잠식해가는 가상화폐의 기세는 맹렬하다. 코인데스크에 따르면 대표적 가상화폐인 비트코인은 24일에도 1비트코인에 2500달러를 돌파하는 등 사상 최고치 행진을 이어갔다. 일각에서는 과도한 상승에 대한 경계심도 만만치 않다. 그러나 기존 통화에 대한 불신과 함께 결제수단으로서의 편리성이 부각되면서 당분간 가상화폐 수요는 계속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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