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대통령은 1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월가의 대형 은행을 분리하는 것을 적극 고려하고 있다”며 “소비자금융과 투자은행을 분리하는 1933년의 글래스-스티걸법을 되살리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글래스-스티걸법은 투기 규제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법이다. 서로 다른 금융업종 간의 상호 진출을 금지하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이 법은 투자은행 부문과 예금과 대출의 금리 차이로 생기는 예대마진으로 돈을 벌어들이는 일반 상업은행을 분리토록 정해 놓았다. 글래스-스티걸법이 폐지되기 전에는 투자은행과 상업은행이 분리돼 고객의 예금으로 주식투자를 할 수 없었고, 사내 겸영이 금지됐다. 따라서 만약 이 법이 부활하면 상업은행이 뿌리인 씨티그룹, 뱅크오브아메리카(BofA) 등은 둘로 쪼개질 수 있다.
글래스-스티걸법은 금융 업종 간 칸막이를 허물어 경쟁을 촉진해야 한다는 논리에 따라 클린턴 행정부 때인 1999년 폐지됐다. 2000년대 월가에서 투자은행과 상업은행 겸하는 초대형 금융기관 탄생이 가능해진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2010년 도드-프랭크법이 탄생했다. 도드-프랭크법은 글래스-스티걸법의 부활로 평가받을 만큼 월가를 강력하게 옥죄는 규제책이다. 이 법은 대형 금융회사들에 대한 규제 및 감독 강화, 소비자 보호 등을 골자로 한다. 은행이 차입자의 상환능력을 꼼꼼히 따지도록 해 부실대출을 막자는 내용이다. 여기에는 ‘볼커룰’이 포함돼 있다. 볼커룰은 금융지주사에 대한 감독 강화 방안의 하나로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의 업무 영역을 분리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트럼프는 도드-프랭크법이 기업 대출을 어렵게 한다는 이유로 손을 볼 것이라고 주장해오다가 지난 2월 3일 도드-프랭크법의 일부 내용을 폐지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고, 지난달 21일에는 도드-프랭크법 일부를 재검토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당시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은 “재검토의 목표는 금융 시스템을 지키기 위한 규율을 모두 포기하자는 게 아니라 적절한 규제를 시행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므누신 장관의 설명에도 장기적으로는 금융기관의 부실 위험을 높일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도드-프랭크법을 지우는 데 속도를 높이던 트럼프가 글래스-스티걸법을 부활하려는 이유는 최소한의 규제를 두어 2008년 금융위기가 재발하는 것을 막고자 함으로 풀이된다. 트럼프는 도드-프랭크법을 대폭 손질할 것이라고 주장하면서도 항상 “부분 수정”을 강조했다. 즉 기업들이 돈이 쉽게 빌릴 수 있게 해야 하지만 규제는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도드-프랭크법을 수정해 전반적인 규제는 풀되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을 분리해 대규모 손실은 막는다는 포석이다. 또 글래스-스티걸법이 만들어질 당시에는 지금과 같은 고도의 파생상품, 외환상품 같는 위험도 높은 상품이 드물어 부활하더라도 도드-프랭크법보다는 헐거운 규제가 될 전망이다.
트럼프 행정부 요직에 있는 골드만삭스 사단의 꼼수가 작용했을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글래스-스티걸법의 부활을 암시하는 발언을 하기 전 게리 콘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과 므누신 재무장관은 이 법이 되살아나는 것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두 사람은 모두 글래스-스티걸법의 21세기 버전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했다. 공교롭게도 콘 위원장과 므누신 장관은 모두 미국의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 출신이다. 전통적인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는 글래스-스티걸법이 다시 도입돼도 상대적으로 타격이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행협회는 당장 이날 글래스-스티걸법 재도입에 반대한다고 성명을 발표했다. 로버트 니콜스 협회장은 성명을 통해 “글래스-스티걸법 때문에 주택 시장과 월가가 붕괴한 게 아니라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 법이 부활하면 뱅크오브아메리카, 웰스파고와 같은 은행이 새로운 비용을 부과하는 어려움에 직면할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