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CT 정책 엇박자] ‘ICT 발전지수 세계 1위’면 뭐해…초융합 가로막은 규제장벽

입력 2017-03-20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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촘촘한 규제에 한국 핀테크 산업 ‘답보’…中은 사후규제로 금융산업 급성장…대통령 직속 총괄 조정기구 필요

“우리는 4차 산업혁명의 물결 속에서 중요한 변화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국가의 미래가 좌우될 것입니다.”-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지난 15일 과학기술전략회의 겸 국가과학기술 자문회의를 주재하며 ICT(정보통신기술) 초융합 시대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한 발언

정부가 이처럼 초융합시대의 ICT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현장은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규제개혁장관회의나 ICT특별법에 근거한 정보통신전략위원회 등을 통한 개선이 거듭되고 있으나 여전히 규제의 장벽은 높다. 규제 혁신과 ICT 초융합 시대를 이끌어줄 정부의 컨트롤타워가 없다는 게 현실이고 가장 큰 문제다.

◇주무부처 홀로 해결할 수 없는 ICT 초융합= 우리나라 ICT 산업은 하드웨어 부문에서 꽤 높은 경쟁력을 지니고 있다. 국제전기통신연합(ITU)이 발표한 우리나라의 ICT 발전지수(ICT Development Index)는 2015년 기준 8.93점으로 세계 1위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이 같은 걸출한 성적표에 대해 “인구 대비 유무선 전화 가입자 수, 유무선 브로드밴드 가입자 수, 인터넷 접속 가구 비율 등 주로 하드웨어와 인프라 부문에서 강점을 지닌 덕에 경쟁력이 높이 평가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우리는 ICT 기초체력이 뛰어나다. 이를 적극 활용하면 분야별 벽을 허물어 융합의 시대를 쉽게 이끌어낼 수 있다는 의미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ICT 융합이 절실한 시점에 미래를 대비한 준비지수는 오히려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바로 촘촘한 규제 탓이다.

지난해 세계경제포럼에서 스위스투자은행이 발표한 국가별 4차 산업혁명 준비지수에서 한국은 세계 129개국 중 25위를 기록했다. 일본(12위)이나 대만(16위)에 비해 뒤처진 수치다. ICT 분야별 경쟁력은 글로벌 수위를 달리고 있지만 초융합이 관건인 4차 산업혁명에 대한 대비는 부족하다는 뜻이다. 보수적인 정부 정책이 발목을 붙잡은 셈이다.

오는 7월 온라인에서 공인인증서 없이 신용카드만으로 본인 확인이 가능한 시스템이 도입된다. 정부 규제가 복잡해 도입 부담이 컸지만 지난해 민간기업(한국NFC)이 국무조정실에 민원을 냈고, 규제 간소화 조정안을 가까스로 받아내 서비스 시행에 나설 예정이다.

대표적 4차 산업혁명의 단초로 여겨지는 핀테크 산업 역시 촘촘한 규제 탓에 답보 상태다. 서비스 수준이나 기술력은 선진국에 모자람이 없다. 반면 보수적 금융 규제 탓에 서비스 상용화 단계에서 답보상태에 머물고 있다. 여러 개의 법안이 복잡하고 전방위적으로 그리고 디테일하게 얽혀 있다는 점도 문제다. 미래창조과학부의 승인을 받아내도 금융위원회 규제에 가로막히는 경우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중국= 한국보다 뒤늦게 핀테크 산업을 시작한 중국은 벌써 우리를 4~5년 앞질렀다. “문제가 생기면 그때 규제하겠다”는 중국의 사후규제 기조가 금융발전에 고스란히 녹아든 덕이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방식의, 이른바 ‘흑묘백묘’ 경제론이다.

대표적 사례가 중국 인민은행의 ‘제3자 지급결제업 허가’다. 은행이 독점해왔던 지급결제 서비스에 정부가 제3자 진입을 허용했다. 일단 시작해보고 문제가 생기면 규제한다는 개선안이 핀테크 발전을 이끌어냈다. 알리페이(Alipay)와 텐페이(Tenpay)등 제3자 지급 결제 방식을 지닌 회사가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게 된 배경이다.

기존 금융산업의 기득권보다는 어떤 방식으로든 금융산업을 발전시켜 국가 경제를 이롭게 하면 된다는 생각이 중국의 핀테크 혁신을 키웠다. 반면 은행계좌 결제를 바탕으로 한 우리나라는 카카오페이와 네이버페이 등은 중간 역할에 머물 수밖에 없는 구조다.

자율주행차 역시 세계적 기술을 지녔으나 도로교통법과 자동차관리법, 보험관련 규제에 묶여 발달 속도가 더딘 편이다. 인공지능(AI) 기술의 윤리적 책임도 풀어야 할 숙제다. 예컨대 교통사고가 발생했을 때 법적 책임을 AI에 물릴지, AI의 제조사나 사용자가 대신 책임을 져야 하는지에 대해 논란이 여전하다. 논란을 중단시킬 규제 개선이 절실한 상황이다.

당장 우리 주변에 속속 생겨나는 VR방도 사정은 마찬가지. 최근 가상현실(VR)과 증강현실(AR) 게임이 인기를 끌면서 이른바 VR방 또는 AR방이 늘어나고 있다. 노래방과 PC방에 이은 또 하나의 놀이문화다. 그러나 규제에 발목이 잡혀 휴게음식점으로 허가를 내고 입장권 수익과 음료 판매로 수익을 내고 있다. VR게임은 명목상 서비스인 셈이다.

◇사후 규제 앞세워 초고속 성장한 중국 금융산업= 이 같은 규제 개선의 필요성은 정부도 인정하고 있다. 다만 이들 전체를 관할할 조직은 없는 상태다.

정부는 지난해 2차 과학기술전략회의에서 ‘9대 국가전략프로젝트’를 발표하고 약 1조6000억 원의 예산을 투자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와 함께 규제개혁장관회의나 ICT특별법에 근거한 정보통신전략위원회 등을 통해 관련 규제 개선에 나선다고 밝혔다.

황 권한대행 역시 국가과학기술위원회를 통해 “우리 경제가 지속적으로 성장해 가기 위해서는 우리가 강점을 갖고 있는 과학기술과 ICT를 잘 활용한 신산업 창출 노력이 중요하다”며 “바이오·의료, 자율주행차, 가상·증강현실 등 미래 유망 분야를 선제적으로 발굴하고 연구개발을 통한 원천기술 확보와 함께 관련 규제개혁을 신속히 추진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나 대통령 탄핵으로 조기 대선이 확정되면서 관련 주무부처는 사실상 멈춘 상태다. 차기 정부가 일찌감치 정부조직을 개편하고 관련산업 육성에 나선다는 가정 아래 최소 6개월은 답보 상태가 이어질 것으로 우려된다.

범부처 차원의 협업이 절실한 상황에 일부 부처는 제각각 행정을 펼치고 있다. 이들을 총괄해 조정할 수 있는 대통령 직속기관의 필요성도 절실한 상태다.

이민화 벤처기업협회 명예회장은 “한국의 기술 수준 23위인 데 비해 제도 경쟁력에서 69위, 규제 경쟁력은 90위권”이라며 “새로운 혁명시대로 이어지려면 기술 수준과 함께 제도와 법의 선진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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