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대리인인 김평우 변호사가 22일 헌법 조문까지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하며 재판이 부당하다고 토로했다. 이틀 전 이정미 재판관에게 고성으로 항의하며 논란을 빚은 김 변호사는 이날 한 술 더 떠서 특정 재판관을 노골적으로 비난하는 등 막말을 쏟아냈다.
헌법재판소는 이날 오전 10시 16차 변론기일을 열었다. 증인신문이 끝난 뒤 오후에 재개된 재판에서 김 변호사는 발언권을 얻어 “국회가 졸속 의결했기 때문에 내용에 들어갈 것도 없다, 극한적으로 대립한 국민을 구하고 결정을 못하겠다고 국회에 던져주시라”고 요청했다. 이미 16차례나 변론기일을 열었는데, 원점으로 돌아가서 국회 탄핵소추 의결이 정당한지를 따지자는 것이다.
김 변호사의 주장은 이렇다. 국회는 탄핵소추 의결 과정에서 박 대통령의 잘못을 13가지로 나열했는데, 표결을 각 사유마다 했어야지 한꺼번에 묶어서 의결하는 건 무효라는 것이다. 국회 탄핵소추 의결을 ‘섞어찌개’라고 표현한 그는 절차가 잘못된 심판이라는 점을 헌재가 확인하고 각하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각하는 심판으로 넘어오는 과정이 잘못돼 탄핵사유가 있는지 확인하지 않는 결정이다. 각하 결정이 내려지면 박 대통령은 바로 직무에 복귀할 수 있게 된다.
김 변호사는 “탄핵이 인용되면 박 대통령은 검찰에 구속되고 교도소를 갈 수도 있다, 어떤 결론을 내려도 엄청난 비난과 공격을 받을 것”이라며 “각하결정한다면 국민 상식에 부합하기 때문에 누구도 이론을 제기할 수 없는 것이고 헌법재판관 여덟 분은 영웅이 되신다”고 말했다.
하지만 소추위원과 박 대통령 대리인단은 이미 재판 초기 준비절차를 통해 탄핵소추 의결 절차는 문제삼기 않기로 합의했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심판에서도 국회가 대통령에게 해명 기회를 주지 않고 의결한 것이 위법하다는 논란이 있었지만, 헌재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적법절차 원칙’은 국민의 기본권을 지키기 위한 것이지, 권력기관인 대통령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게 아니라는 판단이다.
김 변호사는 2004년 헌법재판소 판결이 잘못됐다고 주장하며 대통령이 탄핵소추될 경우 권한이 정지되도록 규정한 헌법 65조도 ‘잘못된 규정’이라고 주장했다. 또 그동안 재판부가 편파적으로 재판을 진행했다며 주심인 강일원 재판관을 향해 “청구인(국회)의 수석대리인이고 재판관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재판장인 이정미 재판관은 “표현이 지나치신 것 같다, 감히 그런 말을 하실 수 있는 게 아니다”라고 주의를 줬지만 김 변호사는 탄핵소추를 의결한 국회를 ‘야쿠자’에 비유하고 절차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한 재판관들의 결론을 ‘독단적인 의견’이라고 표현하는 등 비난을 멈추지 않았다. 특히 강 재판관에 대해서는 “의견이 맞는지 안맞는지 증거를 대시라”고 말하기도 했다. 김 변호사는 재판관들의 의견이 맞는지 검증하기 위해 헌법학자를 비롯한 정치인, 법조인 등 20여명을 증인으로 신청했다. 여기에는 이 재판관 퇴임 전에 선고가 바람직하다고 말한 박한철 전 소장도 포함됐다.
이 재판관은 재판관들의 협의를 거쳐 증인신청을 모두 기각한 뒤 “품격있는 재판을 위해 협조해주시기 바란다”고 호소했다. 김 변호사를 향해서는 “재판부가 굉장히 모욕적인 언사도 참고 있었는데 지나치다”고 지적했다. 이 재판관은 “사실조회 70건 중 68건이 대통령 측이 신청해서 이뤄졌고, 청구인 증인이 9명인데 반해 대통령 측 증인은 26명이 채택됐다”며 “법률적으로 변론할 기회를 충분히 드렸는데, 불공정이다 무효다 이렇게 주장하면 누가 납득을 하겠느냐”고 말했다.
권성동 소추위원은 변론이 끝난 뒤 “반박할 수 있었지만 언급하는 자체가 헌법재판의 격을 떨어트릴 수 있어서 굳이 반박하지 않았다”며 “이미 준비절차에서 탄핵소추 적법성에 대해 피청구인 대리인단도 동의를 해놓고 이제와서 주장하는 건 소송지연의 목적이 있는 것이라고 볼 수 밖에 없다”고 평가했다. 권 위원은 “결국 대통령이 원하는대로 결론이 나면 문제제기를 하지 않고, 반대의 결론이 나면 탄핵심판 정당성을 부인하거나 비난하는 요인을 만들기 위한 게 아니겠느냐”는 말도 덧붙였다.
이날 대통령 측은 강 재판관이 편파 진행을 하고 있다며 재판에서 빠져달라는 회피신청을 냈다가 기각당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