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초 이 문제는 미국 대선 과정에서 민주당 전국위원회 컴퓨터와 힐러리 클린턴의 선대 본부장인 존 포데스타의 이메일이 누군가에 의해 해킹되어 폭로 전문 매체인 위키리크스 손에 들어간 데에서 비롯되었다. 미국 정부는 초기 조사 결과 러시아와의 연관성을 포착하였다. 그러나 러시아 정부는 이러한 의혹을 근거 없다고 부인하였다.
당시 유세 중이던 트럼프 후보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클린턴이 국무장관 시절에 대러 정책을 잘못하여 미·러 관계가 나빠졌다고 하면서 자신의 대러 정책은 다를 것이라고 공언하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 대한 호의적인 발언을 하는 등 친러 성향을 내보이고 있었다. 반면, 클린턴 후보와 러시아의 관계는 좋지 않았다. 푸틴을 비롯한 러시아 지도부는 과거 클린턴이 국무장관 직위에 있으면서 2012년 러시아 총선을 부정 선거라고 지칭한 데 대해 거부감을 갖고 있었고, 총선 직후 부정 선거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가 발생하자 그 배후에 미국의 공작이 있다고 여겼다. 시위에 적극 참여한 단체 중에는 미국 등 외국의 지원을 받는 민주주의, 인권, 선거 감시 관련 단체들이 있었는데, 이후 푸틴은 이들 시민사회단체의 활동을 대폭 규제하는 법을 만들었다. 이럴 정도로 푸틴은 서방 측으로부터 러시아에 미치는 정치적 영향에 민감하게 반응하였다.
사안의 배경이 이러한 데다가 유출된 이메일의 내용이 클린턴에게 불리한 것이었으므로 러시아가 트럼프의 당선을 위해 공작을 한 것이 아니냐는 의심이 광범위하게 퍼졌다.
그러나 유독 트럼프는 러시아가 해킹의 배후라는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러시아 연루설을 믿지 않는다면서, 오히려 유출된 클린턴 측 정보가 사실이니 이러한 정보 유출은 나쁠 게 없다는 태도를 취하였다. 반면 미국 정부와 의회의 많은 인사들은 당파적 유·불리를 떠나, 러시아가 미국의 대선 과정에 이런 식으로 개입한 것은 심각한 문제라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
이후 미국 내부에서 조사가 계속되었으며, 러시아가 배후에 있다고 본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 9월 중국 항저우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를 계기로 푸틴 대통령에게 이러한 행위를 중단하지 않으면 심각한 결과가 있을 것임을 직접 전달하기에 이른다.
대선이 끝나자 일단 이 문제도 덮어지는 듯하였다. 그러나 미국 중앙정보국(CIA)을 비롯한 미 정보기관이 최종적으로 러시아를 배후로 지목하는 발표를 내놓자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하였다.
즉각 의회의 공화당 지도자 중에서도 문제가 심각하니 초당적으로 사안을 논의하여 대처 방안을 강구하자고 주장하는 인사들이 나왔다. 이들 중 일부는 민주당 중진들과 연명 서한을 보내는 등 공동보조를 취하였다. 트럼프 당선인의 입장을 곤란하게 하는 행동이었다.
트럼프 자신은 CIA의 판단을 믿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는 더 나아가 CIA가 과거 이라크에서 대량 살상무기 존재에 대해 허위정보를 내돌린 전력이 있다고 하여 CIA 자체에 대한 불신까지 언급하였다. 트럼프의 이러한 언급은 조만간 대통령으로 취임하여 정보기관을 지휘하게 될 그가 이 문제를 어떻게 다루려는지에 대한 많은 추측을 유발하였다.
클린턴도 논란에 가세하였다. 그러지 않아도 클린턴과 그 지지자들은 유권자 득표에서 이기고도 선거인단 표에서 패배한 데 대해 아쉬워하고 있던 차였다. 그녀는 러시아의 해킹이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친 요인 중 하나라고 본다는 입장을 취하였다. 그녀는 또 다른 요인으로는 선거 막판에 자신의 개인 이메일 관련 보안 규정 위반 문제를 다시 제기한 미 연방수사국(FBI) 국장의 발표를 들었다. 남편인 빌 클린턴은 오바마 대통령이 대선 전에 러시아 해킹에 대해 좀 더 강하게 경고해 주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라고도 하였다.
오바마 대통령은 남은 한 달여 재임 기간 중 러시아의 해킹에 대한 응분의 대응 조치를 취하겠다고 언명하였다. 그는 대선 전에 조치를 취할 경우 러시아가 대선 투·개표 과정까지 해킹할 것이 우려되었기 때문에 이제부터 조치하겠노라고 하였다.
이처럼 현직 대통령과 차기 대통령의 접근이 다르고, 공화당 내에서도 대통령 당선자와 상당수 의원 간의 입장이 다른 가운데, 다수 여론은 러시아에 대한 강력한 대응을 지지하고 있다. 이제 사안은 미·러 간의 국제적 문제이자 미국 국내 정치 이슈가 되었다. 사안이 어떻게 전개되느냐에 따라 향후 미·러 관계는 물론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입지에 미칠 영향도 커 보인다.
이런 관점에서 앞으로 전개될 상황과 관련하여 유의해야 할 점을 살펴보면, 우선은 오바마 행정부의 보복 조치가 어떤 것일지와, 이에 대한 러시아의 반응이다. 러시아로서는 의혹을 전면 부인하고 있으므로 어떻게 나올지 주목된다.
또한 이 일은 당장 렉스 틸러슨 차기 국무장관 지명자의 의회 인준 문제에 영향을 주고 있다. 틸러슨은 엑손모빌의 회장 출신인데 그의 회사는 러시아와 많은 사업 연계를 가지고 있고, 그는 푸틴 등 러시아 주요 인사와 두터운 친분이 있으며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둘러싸고 그간 미국 정부의 정책과 다른 견해를 보인 것으로 알려져 왔다. 지금 미국이 러시아에 대해 각종 제재를 가하고 있으므로, 그러지 않아도 틸러슨 인준 과정에서 의회로부터 많은 문제 제기가 예상되었는데, 이제 러시아 해킹 건으로 대(對)러시아 경계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으니 인준 청문회의 논란거리가 늘어난 셈이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내년 1월 출범할 트럼프 행정부가 어떻게 대처를 하느냐이다. 만일 트럼프 차기 대통령이 지금처럼 러시아의 개입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대러 관계 개선을 중시하여 이 일을 처리하고자 한다면 미국 내에서 정치적으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트럼프 진영에는 러시아와의 관계를 개선함으로써 러시아가 중국과 연대할 요인을 줄이는 것이 미국의 국익이라는 시각을 가진 인사들이 있다. 이들이 중국 요소까지 감안하여 대러 관계 개선을 밀고 가려 할 가능성도 있다. 그렇다면 국내적 반발을 감수해야 한다. 해킹 때문에 대선 결과가 영향을 받았다고 믿는 정당과 지지자가 엄존하고, 러시아의 해킹이 사실이라고 생각하는 정보기관과 외교 안보 관련 부서의 관료들이 있는 현실에 대처해야 한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이 국내적 요구를 수용하여 러시아에 대한 대처를 하면 트럼프 정부의 대러시아 정책 구도가 초반부터 틀어질 것이다.
어쨌든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 초기에 대면해야 할 국내외적 난제의 하나로 러시아 이슈가 부상한 셈이고, 최소한으로 해석하더라도 해킹 건이 미·러 관계 개선 속도를 조절하는 기능을 할 것이라는 사실은 분명해 보인다.
미국과 러시아 관계는 우리 외교에도 불가피하게 영향을 주는 요소이다. 러시아는 항상 한국을 ‘미국의 동맹’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보려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러 관계가 원만하지 않으면 한·러 관계도 그 영향을 받아온 것이 현실이다.
우리로서는 미·러 관계가 개선되면 그에 맞춰 활용할 궁리를 해야 하고, 악화하면 그 여파를 줄이는 노력을 해야 한다. 우리가 해킹 건과 관련한 미국 내 논란과 미·러 관계의 추이에 주목해야 하는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