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카드나 애플페이와 같은 전자결제시스템 등 비(非) 현금 결제수단 관련 기술이 진화를 거듭하고 있지만 일본의 현금 사랑은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특히 일본 소비자들의 높은 현금 이용률은 중앙은행인 일본은행(BOJ)의 정책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8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이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지난 20년간 일본의 경제성장속도와 인구는 줄어든 반면 시중에 유통되는 지폐나 동전과 같은 현금은 오히려 두배 가까이 증가했다. BOJ의 자료에 따르면 10월 말 기준 일본 시중에 유통된 현금은 101조 엔(약 1083조원)이 넘는다. 특히 지난 2014년에는 전체 결제 대금에서 현금 비중이 80%를 넘어서기도 했다. 실제로 일본은 주요 국가 중에서 비현금 결제수단의 이용 비중이 작은 편이다. 일본소비자신용협회(JCCA)가 국제결제은행(BIS) 자료를 토대로 분석한 결과 한국이 신용·체크카드, 전자화폐 등 비현금 수단 사용 비중이 90%에 육박한 반면 일본의 비현금 사용 비중은 20%에 못 미친다. 문제는 높은 현금 사용률이 BOJ의 통화완화책 효과를 반감시킬 수 있다는 점에 있다고 블룸버그통신은 지적했다. BOJ는 지난 1월 사상 처음으로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하고 연간 80조 엔에 달하는 국채매입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소비자들의 현금 선호도가 높은 경우 금리를 추가로 인하하면 사람들이 자산을 현금화해 보유할 가능성이 그만큼 커져 유동성이 떨어질 수 있다. 이는 유럽에서 고액권인 500유로 지폐 발권을 중단한 이유와 일맥상통한다. 앞서 지난해 스웨덴 중앙은행은 마이너스금리가 현금이 없는 사회에서 더욱 효과를 나타낸다고 밝힌 바 있다. 스웨덴은 고액권인 1000크로나 권종을 단계적으로 폐지해 2013년 완전히 폐지시켰다. 현재 스웨덴 상당수의 시중은행 지점은 고객에 현금 입금 및 출금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다. 스웨덴의 정책금리는 마이너스(-)0.5%다. 시라이 사유리 전 BOJ 이사는 “일본은 현금에 기반한 경제”라는 점을 지적하며 BOJ가 금리를 인하할 수 있는 최저치는 -0.2% 혹은 -0.3%라고 설명했다.
한편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는 저서‘화폐의 종말: 지폐 없는 사회’에서“종이 화폐를 폐지하면 경제를 활성화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로고프 교수는 일본과 유럽 등 주요국 중앙은행이 경기 부양을 위해 돈을 푸는 가운데 이러한 완화정책을 펼치려면 물리적인 지폐 발행 대신 디지털 화폐 발달이 수반돼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