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니 히타치 도시바 등 일본 전자업체들이 설립한 일본 최대의 LCD 패널업체 재팬디스플레이(JDI)가 풍전등화 신세가 됐다. 미국 애플과 중국 메이커의 스마트폰 판매 부진으로 패널 재고가 쌓이면서 수중의 자금이 말라 붙고 있는 것. 이에 민관펀드인 일본산업혁신기구(INCJ)에 긴급 자금 지원을 요청했으나 직접적인 재정적 지원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JDI는 9일 최대 주주인 INCJ에 구제금융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향후 수요가 확대할 것으로 보이는 OLED 패널을 양산하기 위한 자금을 확보해 성장을 지속할 수 있는 체제를 구축하기 위함이다.
이에 대해 INCJ의 담당자는 니혼게이자이신문과의 인터뷰에서 “JDI의 대주주로서 지원할 방침에는 변함이 없다”고 말하면서도 “재정적 지원을 약속한 건 아니고, 지원 내용에 대한 얘기는 지금부터 해야 한다”고 말했다. JDI의 혼마 미쓰루 회장은 “전면 지원”을 요청했으나 대출 및 채무 보증, 증자 등 구체적 방안은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았다고 한다.
JDI는 주력 상품인 스마트폰용 소형 LCD 패널 사업이 삼성전자와 중국 기업들과의 경쟁에서 크게 밀리며 실적이 급격히 악화하고 있다. 지난주 JDI는 2016 회계연도 1분기(4~6월)에 34억 엔의 영업적자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혼마 CEO는 올 1~3월 시작된 스마트폰 시장의 수요 급감과 설비 지출이 겹친 게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JDI는 애플 관련 매출이 절반일 정도로 애플 의존도가 크다. 그러나 최대 고객인 애플의 아이폰 판매 부진으로 JDI의 패널 재고가 늘면서 현금 유동성에 문제가 생기자 INCJ에 긴급 지원을 요청하게 됐다.
여기다 세계적으로 LCD 시장의 수요는 급변, 기술 경쟁도 심해 수시로 거액의 투자가 불가피하다. 최근 신설한 이시카와 현 하쿠산 공장 생산설비 지출이 겹친 것도 회사의 유동성 문제에 일조했다는 지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순발력있게 대응하려면 미리 자금을 두둑하게 확보해 둘 필요가 있다고 JDI는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JDI는 INCJ의 보증으로 주거래은행에서 수백억 엔의 자금을 차입해 OLED 양산 투자에 나설 계획이지만 이 시장은 이미 한국업체들이 거액을 투자하며 장악한 상태다. 삼성은 올해 3억 대의 패널을 양산할 계획이고, JDI가 양산 시기로 잡고 있는 2018년에는 LG디스플레이도 수천억 엔을 투자해 양산 체제를 갖출 전망이다. 후발주자로 나서는 JDI 입장에서는 자금 조달이 난항하면 성장 전략도 그림의 떡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큰 상태다.
현재 INCJ 내부에서는 JDI에 대한 지원에 대해 ‘밑 빠진 독에 물붓기식’이라며 부정적인 견해가 나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직접적인 자금 투입 대신 채무보증을 서자는 쪽으로 가닥이 잡히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