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양보를 가르치기 어려워진 시대

입력 2016-08-10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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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경 기획취재팀장

“엄마, 나 수안이 같지 않아?”

아이가 미용실에서 거울에 머리를 이리저리 돌려 보며 흡족한 듯 말했다.

여름이라 간수를 잘 하지 못하는 긴 머리카락을 짧게 잘랐다. 그랬더니 아이는 얼마 전 극장에서 무섭다면서 잘 보지도 못 하더니만 ‘부산행’ 속 또래 아이를 떠올렸던 모양이다.

“그래, 수안이 같네. 예뻐”라고 답해주면서 극 중 주인공 석구 역을 맡은 배우 공유가 딸 수안을 다그치던 한 장면이 다시 떠올랐다.

전국의 스크린 점유율이 꽤 높은데도 개봉 전주에 유료 시사회라는 일종의 편법까지 썼고 ‘여름엔 역시 블록버스터’란 공식도 있으니 인기를 끌 것은 예상했다. ‘재미있다’, ‘아니다’란 잣대로만 놓고 보면 재미없지 않은 영화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평가할 때 이 영화는 나에겐 ‘별로’였다. 사회 비판적 메시지를 어설프게 얹으려 한 것이 옥에 티처럼 보였달까. 오히려 여느 좀비 영화처럼 ‘개연성이라곤 전혀 없는’ 구성을 택한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해서 사회적 메시지를 짜임새 있고 강하게 전달한 영화도 아니었다는 판단이다.

하지만 현실적 딜레마를 느낄 수 있는, 살아 있는 몇몇 장면들은 수확이었다.

미용실에서 딸에게 “수안이 같네”라고 말한 뒤 이렇게 고백했더랬다. “엄마도 같은 상황이라면 영화에 나오는 공유 아저씨처럼 너에게 말했을 것 같다”고.

공유가 연기한 펀드매니저 석구는 헤어져 사는 엄마를 보고 싶다는 딸의 간청에 마뜩잖지만 부산행 KTX에 오른다. 좀비의 습격으로 아수라장이 된 열차 안. 간신히 좀비를 피한 몇몇이 통로에 남아 있게 됐을 때였다. 수안은 아빠가 자리에 앉으라고 하지만 당연한 듯 할머니에게 자리를 양보한다. 아빠의 표정은 좋지 않다. 둘만 남게 됐을 때 아빠는 딸에게 분명히 들으라며 말한다. “이럴 땐 남 신경쓰고 자꾸 양보하는 것 아니다”라고. 아이는 왜 그래야 하는지를 말 대신 눈빛으로 묻는다.

영화는 그러나 살아남기 위한 각자도생(各自圖生)이 얼마나 참혹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아빠 석구의 직업도 철저하게 경제 논리, 이해 관계에 복속하는 것이다. 작전을 해서라도 자신이 산 종목의 가격은 높여야 하고, 잘 안될 것 같은 종목은 한시라도 빨리 팔아치워야 한다고 지시하고 행동한다. 석구의 전화 지시에 망설이는 부하 직원에게 “우리가 언제부터 일일이 개미를 챙기면서 일했어?”라고 소리친다. 이런 자세로 일관하다 보면 효율성과 이익 창출로 향하지 않는 모든 일은 무가치하고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라 판단하는 사회가 되고 말 것이다. 이러한 마음가짐 자체가 재앙을 불렀음은 석구와 동료가 사들이며 가격을 높이려 했던 바이오 기업이 바로 좀비를 탄생시킨 원흉인 것으로 암시되고 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상대가 살면 내가 죽을 수도 있는 극한의 상황에서 아이에게 ‘양보’라는 거룩한(?) 잠언을 실행하라 할 수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불편했다. 그리고 나 역시 배우 김의성이 연기한 한 기업의 상무 용석, ‘두려움’ 때문에 이기심을 흉악하게 드러내지만 전염을 피하지 못했고 그 순간까지도 “도와달라”고 웅얼거리던 너무도 현실적인 캐릭터의 운명을 답습하지 않을까 해서 기분이 영 좋지 않았다. 그런 상황을 마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회피 기제의 작용으로 영화가 별로였다고 평가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무의식적으로 우리는 효율적이고 이득을 얻는 쪽으로 움직인다. 모르는 사람에게 굳이 길을 가르쳐 주려 하지 않고, 더 벌수록 더 내야 하는 세금을 법 안에서 적극적으로 회피하는 걸 현명하다고 본다. 수안이 엄마도 수안이가 살아남아 왔을 때 “잘했다”고 할지 모른다. 대부분이 죽었는데도. 물론 아이는 노숙자를 가리켜 “공부 안 하면 이 사람처럼 된다”는 아저씨 용석에게 “우리 엄마는 그런 말하는 사람은 나쁜 사람이래요”라 했으니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아이를 보면 날마다 딜레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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