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행 인 데어, 레이디즈(Hang in There, Ladies)

입력 2016-08-05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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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경 기획취재팀장

“여성들은 승진하려는 야망(vertical ambition) 자체가 없다. 여성들은 본능적으로 행복하기 위해서 일을 한다.”

“성 다양성(Gender Diversity)은 광고업계에서 이슈가 되고 있지도 않으며 (그 논쟁이 언급됨으로써) 금융 서비스 분야에서 그렇듯 다른 분야도 상황은 악화되고 말 것이다.”

“(젠더에 대한) 망할 놈의 논쟁은 끝났다.”

처음엔 갸웃했지만 조금 더 읽고 생각해 보니 판단을 유보할 필요가 없었다. 그냥 이건 망언(妄言)이었다.

그것도 ‘소비자’를 오랫동안 이해하고 분석해 왔다는 전문가의 말이다. 고객인 기업(광고주)들이 더 많은 소비자를 유인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세계적인 광고업체 사치&사치에서 거의 20년간 경영을 담당하다 2년 전부터는 회장을 맡고 있는 케빈 로버츠가 한 말이다. 질레트와 프록터앤갬블(P&G) 등 누구보다 소비자에 대한 이해가 넓어야 하는 다국적 기업 경영도 맡아 봤고, 이제는 그 기업들의 광고를 유치해 월급을 받아 온 회장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브랜드와 소비자를 연결하는 ‘러브마크’란 개념을 만든 걸로도 유명한 그 인물, 맞다.

최근 비즈니스인사이더(BI)와의 인터뷰에서 로버츠 회장은 “기업들은 여성들이 리더 역할을 맡기보다 행복해지고 싶어서 일한다는 걸 모르고 낡은 잣대로 이들을 보고 있다”면서 “여성들은 승진에 대한 야망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리더 자리에 여성이 적은 것은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도 했다. 심지어 “경영진은 많은 여성들이 ‘C자가 들어가는 자리(최고경영자인 CEO 등을 포함)’로 발전하겠다는 야망보다는 일 잘 해내고 행복해지는 걸 원하는데 그걸 간과하고 있다”고까지 설명을 늘어놨다.

광고업계 유리천장, 그렇게 말 안 해도 정말이지 견고하다. ‘3% 콘퍼런스’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4년 기준 전 세계 6대 주요 광고사 CEO는 모두 남성이다. 여성이 광고업계 종사자의 46.4%로 절반 정도나 되지만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가운데에서라면 고작 11.5%밖에 안 된다. 이렇다면 로버츠 회장이 우려할 만큼(?) 경영진의 여성에게 승진 야망이 거세돼 있다는 이해도가 낮은 건 아니었지 싶다.

그러나 최근처럼 성차별이나 불평등에 대해 ‘정치적인 올바름’이 요구되는 때에 로버츠 회장의 발언에 대한 부정적 반향은 커질 수밖에 없었다. 곧바로 사치&사치의 모회사인 퍼블리시스 그룹은 “그룹의 입장과 다르다”고 해명하고 로버츠 회장에게 휴가를 종용했으며 곧바로 4일(현지시간) 사임 소식이 들려왔다.

다시 중요한 명제 “여성에게는 승진하려는 야망이 없다”의 진단으로 돌아와 보자. 이건 진실인가 아닌가.

우선 승진하려는 야망이 있든 없든 그건 남성과 여성이 아닌 ‘사람’의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여성을 싸잡아 일반화하는 건 폭력이며 이런 일반화가 상호간의 혐오 문화를 배태하는 것이다.

또 하나. 여성에겐 승진이 부담스러운 상황이 생길 수 있다. 요즘은 비혼도 많고 결혼해도 아이를 갖지 않는 여성도 많지만 통상적으로 겪는 결혼과 출산, 육아 과정은 여성에게 상당한 책임을 지운다. 일과 가정이라는 두 가지 공을 돌려받는 ‘저글링’이 힘들어 일을 쉬거나 그만두면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기가 쉽지 않다. ‘슈퍼맘’ 역시 존재하지 않는 개념이니 그 허상을 강요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미디어 업계에도 여성들이 늘어나고 있다. 똑똑한 후배들이 많지만 결정권을 쥔 ‘위’에 있는 여성 선배들이 적어 걱정이다. 혁신의 아이콘인 가디언에도 194년 역사상 처음으로 작년에야 여성 편집국장이 뽑혔고, 뉴욕타임스의 질 에이브럼슨은 중도 퇴진했다. 유리천장을 걷어낼 곳이 천지다. 결론은 일단 지구력이다. 잘 버티자, 그리고 ‘위’에서도 만나자 라고 여성 ‘전우’들에게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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