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일본의 ‘1억 총활약’ 구호가 잘 들리는 이유

입력 2016-05-31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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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경 기획취재팀장

일본은 미우나 고우나 공부하지 않을 수 없는 대상, 뜯어보지 않으면 안 되는 텍스트이다. 사회 현상이든, 경제든 일본이 먼저 가는 ‘선배’라 그렇다.

심각한 저출산·고령화, 우리보다 먼저 왔다. 인구 감소는 경제활동의 위축을 가져오고 복지 부담은 늘려 국가 위기로 이어진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7% 이상인 ‘고령화 사회’에 이미 진입한 우리나라는 2년 뒤면 노인 인구가 14%를 넘는 ‘고령사회’, 20%를 넘어서는 ‘초고령사회’에는 2026년이면 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저출산 문제도 심각하다. 통계청에서 발표한 2013년 우리나라 합계 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수)은 1.19명. CIA 월드팩트북이 집계한 지난해 9월 우리나라 합계 출산율도 1.25명으로 초저출산(1.3명 이하) 상태다. 일본은 1.40명으로 초저출산은 아슬아슬하게 넘어섰다.

젊은 사람들의 취업이 어렵고 취업해도 안정적이지 않으며, 주거에 많은 돈 쓰고 나면 아이를 낳아 기른다는 것이 사치에 가깝다. 이미 아이를 낳아 기르고 있는 엄마들도 경력 단절이 오면 다시 원하는 직장, 원하는 일을 갖지 못할 게 분명하니 괴로워하며 사회적 비용을 치른다.

‘선배 나라’ 일본을 보자.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지난해 10월 개각과 함께 ‘1억 총(總)활약 사회’란 슬로건을 내걸었다. 일본 인구 1억2000여만명은 현재의 출산율로 가다간 2050년이면 무너져버릴 것이라며 일본인이 가정과 직장, 지역사회에서 총활약해서 50년 후에도 인구 1억명을 유지하자는 것이다. 측근 가토 가츠노부(加藤勝信)를 ‘1억 총활약 담당’이란 장관직까지 만들어 배치, 정책의 신속한 실현이 가능하도록 했다.

얼마 전 세부안도 발표됐다. 비정규직 임금을 끌어올리고 최저임금을 해마다 3%씩 올리며 연장근무는 40시간으로 상한을 두며, 퇴근부터 다음 날 출근까지 최소 11시간을 쉴 수 있도록 하는 기업에는 보조금을 지급하는 안까지 내놨다. 뭐니 뭐니 해도 눈에 띄는 건 내년까지 50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보육시설을 확보한다는 계획. 2019년까지 모든 초등학교에 122만명 규모의 방과후 아동 교실을 두고 보육사의 급여도 인상하기로 했다. 우리나라 출산 대책이 대체로 저소득층 대상이거나 난임 지원 및 출산 독려에 불과해 아쉬웠다면 일본은 안심하고 아이를 맡길 수 있는 보육 및 교육 시스템 확보가 중장기적으로 현실적인 대책이라는 걸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저출산 고령화 정책의 컨트롤 타워도 대통령이다. 대통령이 위원장인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노무현 전 대통령 때인 2005년 만들어졌다. 이명박 정부 출범 직후인 2008년 복지부 장관 소속으로 위원회 지위가 떨어졌지만 2012년 다시 대통령이 맡게 됐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위원회를 주재하며 “지금부터 2020년까지가 골든타임”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저출산을 가져오는 만혼은 일자리를 갖지 못하기 때문이며, 그래서 노동개혁이 중요하다던 박 대통령의 발언은 어쩐지 저출산이 목적이 아니라 수단에 불과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게도 했다.

9개 부처에 나뉘어 시행되는 저출산·고령사회 대책은 예산은 많이 들었는데 사업은 다 쪼개져 있고, 그래서 결과물은 미약하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예산 규모로 치면 보건복지부가 중심을 잡고 가야 하는데 업무가 많아 저출산까지 신경 쓰기가 쉽지 않다. 여성가족부가 있지만 예산이 너무 적어 이름에 걸맞은 역할을 하기가 어렵다. 1억 총활약 실현실 외에도 내각부에 자녀·육아 본부가 설치돼 기민하게 움직이며 각 부처와의 의견 조율을 하는 일본에 비해 행정력의 추진이 분산되고 있다.

일본의 정책 방향이 다 옳다는 건 절대 아니다. 먼저 경험하고 시행착오를 겪은 저출산·고령화에서만큼은 일관되고 중장기적 접근을 하고 있다. 미워도 배울 것과 취할 것을 생각해보자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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