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구에 머물러 있는 배는 언제나 안전하다. 그것이 배의 존재 이유는 아닐 것이다. 안전했기 때문에 떠나야겠다고 결심했다.”
김범수 카카오 의장이 2011년 공식석상에서 밝힌 NHN(현 네이버) 퇴사의 변이다. 이는 김 의장이 카카오를 이끌고 있는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김 의장이 처음 벤처사업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시점은 삼성SDS 입사 이후부터다. 김 의장은 삼성SDS에 재직 중이던 1998년 6월, 서울 행당동 한양대학교 인근에 전국 최대 규모의 PC방인 ‘미션 넘버원’을 부업으로 열었다. 이를 계기로 김 의장은 같은 해 삼성SDS를 퇴사하고 본격적인 벤처사업가의 길로 들어섰다.
사업 수완도 남달랐다. 김 의장은 자신의 전공을 살려 PC방 사업과 연계한 고객 관리 프로그램을 제작해 수익 모델을 구축했다. PC방 고객 관리 프로그램은 예상보다 짭짤한 수익원으로 자리잡았다.
김 의장은 이렇게 모은 자금으로 게임 사업을 진행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1998년 11월 서울 테헤란로 뒷길에 작은 사무실을 임대해 한게임이라는 회사를 세웠다. 이 회사는 1년 6개월 만에 회원이 1000만 명에 달할 정도로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이 때 김 의장에게 위기가 닥쳤다. 별다른 수익 모델이 없는 상황에서 한게임 회원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적자가 나는 구조였기 때문이다.
더 이상 늘어나는 트래픽을 감당하기 어려웠던 김 의장이 만난 사람이 이해진 네이버 의장이다. 둘은 대학교 때부터 잘알던 사이로, 삼성SDS 동기로 절친한 관계였다.
둘의 만남은 한게임과 네이버컴을 NHN(현 네이버와 NHN엔터테인먼트로 분리)으로 합치며 포털업계의 지각변동을 일으켰다. 초창기 때 NHN을 먹여 살린 것은 한게임이었다. 2001년 게임에서 사용할 아이템을 파는 것이 대박이 나면서 NHN을 단번에 국내 포털업계 1위로 등극시켰다.
2007년 김 의장은 미국 시장 개척을 위해 NHN USA 대표로 자리를 옮겼지만, 이듬해 회사를 떠나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벤처기업 ‘아이위랩(현 카카오)’을 인수하며 재기를 모색했다. 아이위랩을 통해 김 의장은 동영상과 사진 등 콘텐츠 공유 기능이 강한 부루닷컴과 집단지성의 기능을 가미한 추천정보 사이트 위지아닷컴을 선보였지만, 시장의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 하지만 김 의장은 포기하지 않고 다른 시각에서 재도전을 했다. 모바일시대로 급변하는 환경을 간파하고 아이위랩을 모바일로 최적화시킨 ‘카카오톡’을 내놓은 것이다.
카카오톡은 2010년 1월 프리챌에서 메신저를 개발한 경험이 있던 이상혁 CSO(Chief Strategy Officer)의 아이디어에서 비롯됐다. 카카오톡은 말 그대로 대박을 쳤다. 회원 수가 6개월 만에 100만 명을 돌파했고, 이후 더욱 가파르게 성장해 1년 만에 1000만 명을 넘어섰다. 아이위랩은 아예 기업 이름을 카카오로 바꿨다.
하지만 이번에도 문제는 수익이었다. 마땅한 수익 모델이 없던 카카오톡 서비스는 자금난에 봉착하게 됐다. 적자가 수년째 이어지면서 카카오는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았다. 위기상황이 최고조에 달하던 2012년 김 의장은 중국 최대 게임기업인 텐센트에서 720억 원, 위메이드에서 200억 원 등 총 920억 원의 자금 유치에 성공했다. 이를 기반으로 카카오는 같은 해 70억 원 흑자 전환에 성공한데 이어 2013년에는 이익을 수백억원 규모까지 늘릴 수 있었다.
기세를 몰아 카카오는 2014년 5월 다음커뮤니케이션과 합병을 선언하고 같은 해 10월 다음카카오 합병법인을 출범시켰다. 자산규모도 기하급수적으로 커졌다. 카카오는 다음과 합병 후 2172억 원이었던 자산이 2조7680억 원으로 늘어났다. 올해 초에는 음악 콘텐츠 기업 ‘로엔’을 인수하면서 자산 총액 5조 원대의 기업으로 성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