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러 흙묻은 채의 식재료를 사려는 편이다. 파나 당근, 양파, 고구마, 감자, 시금치 등 다듬을 때 귀찮아도 조금이라도 덜 가공된 것, 자연 그대로의 것이 싱싱한 것이고, 그것이 몸에 좋을 것이란 판단 때문이다. 손질하는 동안 느끼는 흙냄새와 날 것의 감촉이 좋아 귀찮음을 참아낸다. 하지만 이 정도도 귀찮으니 좋은 식재료를 찾으러 원산지를 찾아다니거나 직접 기른다거나 하는 일은 엄두도 내지 못한다.
안은금주 빅팜컴퍼니 대표는 이런 소비자들에게 가장 자연에 가깝고 싱싱한 것들을 중개해주는 ‘매개’역할을 하는 사람이다. ‘식생활 소통 연구가’혹은 ‘푸드 커뮤니케이터’라고 하면 이해가 될까. 안은금주 대표가 만날 때마다 입에 넣으라 주는 말린 과일이나 과일즙, 울릉도 바람에 꼼꼼히 말린 부각 같은 걸 맛볼 때 느끼는 희열은 남다르다. 먹는 이의 희열이 안은금주 대표가 바로 목표하는 것이다. 물론 그것을 심고 기른 농업인들의 목표이기도 할 것이다. 안은금주 대표의 저서 <싱싱한 것이 좋아>란 제목은 아주 잘 붙여졌다 싶다. 그건 안은금주 대표가 매개하는 공급자와 소비자, 그리고 매개자인 그 모두가 지르는 탄성과도 같으니.
단정하고 뚜렷한 이목구비, 세련된 매무새를 마주하면 안은금주 대표가 하는 일이 이 쪽(?)이라고 가늠하긴 쉽지 않다. 방송 일을 했던 사람이라고 하면 “아하!”하게 될 만큼. 아버지를 닮아 ‘좋은 것은 나누고 적극적으로 알리자’는 신조를 갖고 있던 안은금주 대표는 대학시절에는 응원단장도 했고 행사 기획도 하면서 열정적인 시간을 보냈다. 이미 취직한 것이나 다름없이 돈을 벌고 있었다. 그러나 외환위기를 맞으면서 타격이 왔다. 무엇을 해야할지 몰라 방황하던 그에게 어느 날 아버지가 신문을 슬쩍 주고 갔다. 증권사 채용공고가 있었다. 지원을 했고 합격했다. 증권가에서 보낸 시간은 절대 지금의 안은금주 대표와 무관하지 않았다.
“투자클리닉이라고, 투자에 실패한 분들을 대상으로 다시 어떻게 투자에 나서야 하는지를 컨설팅해주는 부문에서 일을 배우게 됐어요. 어려운 일이었지만 저는 그 일을 하면서 이 분들이 왜 실패했구나, 돈은 어떻게 다뤄야 하는 것이구나 하는 기초를 배우게 됐어요. 그리고 철저하게 고객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서비스 마인드도 배웠죠.”
증권사 일을 통해 방송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더니 그는‘6시 내고향’ ‘고향이 좋다’처럼 전국을 돌아다니는 프로그램을 만나게 됐다. 절벽을 올라 버섯도 따보고 심마니들을 따라 산을 타보기도 했다. 재밌지 않은 것이 없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이렇게 좋은 식재료들이 많은데 이걸 더 잘 팔게 해드릴 수는 없을까’‘이런 식재료를 더 많은 사람들이 접하면 좋을텐데’하는 생각을 멈추지 못했다.
자신을 깊숙히 들여다 봤다. 방송도 재미있는 일이지만 진정으로 가장 행복한 순간은 사람들을 행복할 수 있게 해주는 일을 할 때였고, 특히 농민과 일반 소비자들을 잘 연결해주는 일을 할 때 기뻤다. 10여년간 방송을 하며 알았던 지식,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그동안 열심히 찍어둔 사진과 함께 블로그에 올리고 당장 활동을 시작했다.
대학원에서 공부하던 중이었던 그는 동시에 쓰려했던 석사 논문은 포기하고 말았다. 푸드 커뮤니케이션에 대해 쓰고 싶었지만 전례도 없고 쉽지 않았던 것. 딜레마에 빠져있을 때 방송하며 만났던 80대 농민 한 분의 이야기가 큰 힘이 됐다. “할아버지, 지금까지 아무도 알아주지도 않았는데 억울하지 않으셨어요?”라 묻는 그에게 그 분은 “네가 이렇게 찾아와 주지 않았느냐. 그럼 됐다.”고 하셨다고.
머리가 탁 트이는 느낌이었다. 하루라도 늦기 전에 ‘내가 과연 이 일을 할 수 있을까’하는 불안을 거름삼아 자신이 정말 잘 할 수 있고 행복한 일에 도전해보자는 결정을 내리는데 이 말은 상당히 큰 작용을 했다. 블로그를 통해 사람들이 모이자 농어촌을 직접 방문해볼 수 있게 체험 프로그램도 만들어봤다. 소문이 나자 그에게 기업들도 직원 교육을 제안해 왔다.
농사지으시는 분들은 농사에, 소비를 하는 사람들은 소비에 온전히 충실할 수 있도록 중간에서 커뮤니케이터 역할을 하기 시작한 그가 만든 ‘작품’ 가운데 하나가 CJ에서 하는 ‘계절밥상’이다. 식재료가 어디서 어떻게 왔는지 이야기가 담겨 있는 식당이다. 3개월마다 새로운 식재료로 메뉴를 개발하기 위해 전국을 달려 다닌다.
지방자치단체들과 손잡고 컬리너리 투어도 만들어 하고 있다. 음식을 뜻하는 컬리너리(Culinary)와 여행(Tour)을 결합한 것으로, 여기에도 역시 이야기가 있고 역사가 보여야 한다. 이를 위해 농민들도 교육하고 상인들도 교육하며 직접 메뉴를 만들고 관광 콘텐츠를 개발한다. 그리고 소비자들은 유기농 쌈채소 하나라도 이것이 밥상에 오르기까지 어떻게 자라고 수확되는지를 직접 농장에 가서 체험하게 한다. 그 소중함을 알게 된 가계와 농가는 자연스럽게 연결되고 거래가 일어나게 된다.
농사를 짓는 곳과 도시는 사실 점점 멀어지고 있다. 장거리 운송이 아니라 가까운 지역의 농산물로 건강한 음식을 먹자는 이른바 로컬 푸드(local food) 운동도 나타나고 있는데, 여기엔 사실 안은금주 대표 같은 커뮤니케이터가 없어선 안 된다.
안은금주 대표의 도전의 기원은 더 깊이에 있다. 결코 성장 과정과 무관할 수가 없다.
"부모님이 모두 요리사셨어요. 아버지는 중식 빼고는 거의 모든 요식업을 해 보셨죠. 이 업계에서만 40여년의 경력을 쌓았고 지금도 현업에 계세요. 아버지의 사랑이 가득 담긴 요리들을 즐겁게 먹었던 저는 제가 어려서부터 먹었던 것들이 남들도 다 먹는 것인 줄 알았지요. 칭찬으로 해주시던 문어초밥, 아플 때 해주시던 전골 요리는 누구나 먹을 수 있던 게 아니었던 거에요. 예닐곱살 때부터 아버지를 따라 새벽 장을 보러 다니기도 했어요. 얼마나 즐거웠는지. 장을 보고 와서 비로소 준비하고 학교에 갈 정도였어요. 주말이면 가족끼리 낚시를 자주 갔는데 거기서 저희가 끓여 먹었던 라면은 가공 스프가 아니라 아버지가 직접 만든 특제 양념으로 끓인 것이었죠."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요리 한 길을 걸었던 안은금주 대표의 아버지는 만들고 나누어 먹는 것을 최고의 기쁨으로 아는 사람. 그렇게 만든 음식은 사랑의 힘을 불어넣어준다.
"진짜 음식이 주는 힘이란게 있지 않나요. 저는 지금도 몸이 아프거나 고단하면 천연 재료로 국물을 내어 만든 우동을 하는 집을 찾아가서 한 그릇 먹고 와요. 내가 이 곳의 우동을 왜 좋아할까 되돌이켜 보니 아버지가 해주시던 맛과 거의 같더라구요. 모밀이나 대구 지리 맑은탕도 즐겨 먹는데 이 요리들을 진짜 잘 하는 곳은 식재료가 좋은 곳이에요. 식당의 자신감은 천연 재료에 대한 자신감, 거기서 나오는 것이거든요. 현란한 데코레이션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갖은 양념도 필요없지요."
지금도 도전하고 있는 과제가 있다. 자신이 하고 있는 농촌과 가계, 기업의 연결을 다 아우를 플랫폼을 만드는 일이다. 혼자만의 역할로 가교, 매개를 하기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힘들고 어려운 과제를 자꾸 만들어 실천하는 열정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무엇(what)을 할 것인가를 깨닫고 나면 어떻게(how) 할 것인지는 내가 만드는 것이란 가르침을 주신 분이 계세요. 다 갖춰져 있다고 불안하지 않을까요? 아니에요. 무엇을 할지를 절실히 찾아내고 선택하기까지가 힘든 거에요. 이 힘은 도저히 돈으로는 살 수 없죠. 농민들을 만나보면 이런 자신감을 갖고 계신 분들이 많아요. 저는 목숨만 붙어 있다면 버티고 나가자는 정신이 있어요. 그러면 타이밍이 보입니다. 사람이 보이고 다가 옵니다. 겁내지 말고 자신을 솔직히 들여다 보면 됩니다.”
안은금주 대표와의 인터뷰는 사실 곁가지도 많았다. 그는 끊임없이 대화 속에서도 아이디어를 냈고 제안하고 설득하기도 했다. 놀라운 힘이다.
“경쟁사도 생겼으면 좋겠어요. 저희가 너무 많은 몫을 하고 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