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대내경제의 하방리스크를 인정했다. 다만 기준금리 인하로의 대응에 대해서는 신중모드에 돌입한 상태다. 일부 금통위원은 금융중개지원대출 확대로, 일부위원은 향후 닥칠 위기에 대처하기 위한 정책여력 확보 차원으로 동결을 주장했다. 반면 대표적 비둘기파인 하성근 위원은 일찌감치 25bp 인하할 것을 주장하고 나섰다. 아예 사실상 판단을 내리지 않은 위원도 있었다.
한은이 2일 공개한 2월 금통위 의사록에 따르면 대다수 위원들은 경제성장의 하방리스크가 확대됐다고 평가했다. A위원은 “최근 대내외 여건이 악화되면서 성장의 하방리스크가 확대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B위원도 “연초 이후 지속되고 있는 중국 금융·경제 불안, 국제유가 추가 하락 등 영향으로 경기는 1월 전망에 비해 회복속도가 다소 둔화됐다”고 평가했다.
하성근 위원은 한발 더 나아갔다. 그는 “세계경제의 상황변화와 국제유가의 추가적인 하락행태는 그간 점증해 왔던 우리 경제의 대외적 불확실성과 하방리스크를 현저하게 높였다”고 밝혔다.
다만 이같은 진단속에서도 해법은 각각 달랐다. 우선 하 위원은 25bp 인하를 주장했다. 그는 “추가 금융완화는 점차 약화되고 있는 경제심리와 수출 등 실물부문의 개선, 그리고 저물가 고착화 억제에 기여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는 외국자본 유출확대와 가계부채에 대한 우려는 낮췄다. “외국자본 유출 확대 및 가계부채의 추가적인 증가 등과 같은 상당한 정책비용을 수반할 가능성이 있다”면서도 “우리 경제의 대규모 무역수지 흑자 추세, 상당한 수준으로 축적된 외환보유액 규모, 최근의 외채감소 추세, 그리고 주요국의 경쟁적 통화완화 정책의 확대흐름 등을 감안하면 그 가능성은 상당히 제한적”이라고 밝혔다.
인하가능성은 열어두지만 지금은 아니라는 진단도 있었다. C위원은 “실물경기 및 물가흐름, 유휴생산력 점검 결과는 우리 경제의 적정 금리수준이 소폭 하락하고 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면서도 “현 상황에서는 금리조정의 긍정적 효과는 다소 불확실한 반면 이에 수반되는 부작용과 잠재적 위험은 높은 것으로 생각된다”고 밝혔다.
그는 “향후 기준금리 조정이 이뤄진다면 그 효과는 주로 자산가격 및 환율경로 등을 통해 실현될 것”이라면서도 “주가, 부동산 등 자산가격의 하락 현상은 아직까지는 우려할 상황은 아니다”고 판단했다.
B위원도 “성장 및 물가경로의 높아진 불확실성에 대비한 정책여력의 확보가 보다 강조돼야 할 시점”이라며 “외국인 증권자금 유출 동향, 가계부채 증가 등도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금리인하보다는 금융중개지원대출 등 여타 정책을 적극적으로 발굴할 시점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A위원은 “금리 정책의 여력이 남아있을 때 금융중개지원대출을 통해 금리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한다”며 “이는 가계대출에 대한 영향을 주지 않으면서 경기부양을 위해 필요한 산업에 선택적으로 자금을 지원할 수 있다. 경기부양과 금융안정을 모두 고려할 수 있는 훌륭한 정책수단”이라고 말했다.
D위원도 “대외여건이 매우 불안정한 상황에서는 중앙은행이 정책금리를 조정하더라도 자칫 의도한 효과를 얻지 못하고 정책여력만 소진할 수 있는 만큼 당분간 기준금리 운영에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경제주체들에게 잘 이해시키도록 노력해야 한다”며 “성장의 하방리스크에 대응해 우선 금융중개지원대출제도를 통해 수출, 설비투자 등을 지원할 필요도 있다”고 밝혔다.
향후 정책판단에 무색무취식 원론적 대응도 있었다. E위원은 “글로벌 금융시장 불안의 지속 여부, 주요국 통화·금융정책의 추이, 해외자본 유출입 동향 등에 유의하여 국내 금융시장과 실물경제에 미칠 영향을 최소화하고, 경기개선 모멘텀 마련 및 금융불안 소지에 대한 선제적 대응 등을 통해 거시경제 흐름의 안정성을 유지해 나가야 한다”고만 말했다.
이날 금통위는 기준금리를 1.50%로 결정하며 8개월째 동결했다. 다만 하성근 위원이 인하 소수의견 밝히며 8개월만에 만장일치 동결이 깨졌다. 아울러 이날 이주열 한은 총재는 금통위 직후 기자회견에서 금융중개지원대출을 5조원 확대한 25조원으로 결정하는데 금통위가 합의했다고 밝혔다. 실제 지난달 두 번째 금통위에서는 금융중개지원대출을 신규로 5조원 확대하고 기존 여유자금 4조원을 더해 수출과 설비투자, 창업촉진을 위한 지원방안을 마련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