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테러 자금과 돈세탁을 원천 봉쇄하는 대책 마련을 추진하고 있다고 24일(현지시간)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이 보도했다.
고액권인 500유로(약 68만원) 지폐를 아예 폐지하거나 고액 상품을 현금으로 구매하는 것을 금지하는 방안 등이 검토되고 있다. 테러단체나 범죄 조직이 자금을 조달하거나 탈세, 돈세탁하는 것을 철저히 막겠다는 의도다.
이런 구상은 이달 들어 갑자기 현실성을 띠기 시작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독일과 프랑스 재무부가 500유로 지폐 폐지 방안에 합의해 지난 12일 EU 재무장관회의에서 방안이 채택됐다. 이르면 5월 중에 큰 틀이 도출될 수 있다. 또 일부 EU 국가는 탈세 등 범죄 대책 일환으로 현금 지불에 상한선을 마련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미 스페인은 원칙적으로 2500유로 이상의 현금 결제가 금지된 상태다. 유럽 정치권에서는 현금 지불 상한을 2000~5000유로 사이에서 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고 신문은 덧붙였다.
유럽중앙은행(ECB)도 500유로 지폐를 폐지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브노아 쿠레 ECB 정책위원은 지난 11일 프랑스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자금세탁을 가만히 두고 볼 수는 없다”며 “조만간 500유로 폐지 결정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는 “500유로 지폐는 일상 생활에서 거의 쓰이지 않고 있지만 현금 유통량의 30%를 차지하고 있다”며 “대부분 범죄 목적으로 쓰이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미 EU 역내 슈퍼나 할인점에서 위조지폐 가능성을 경계해 고액권을 받지 않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신문은 덧붙였다.
일련의 규제가 도입되면 고급 자동차와 부동산, 보석 등을 현금으로 구매하는 것이 어려워진다. EU 지역을 방문하는 해외 관광객의 쇼핑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신용카드 결제 또는 은행 송금으로만 구매가 이뤄지면 각국 정부가 돈의 흐름을 파악하기 쉬워진다.
중동과 구소련권의 블랙마켓에서도 유로 현금이 널리 유통되고 있어 EU가 규제를 서두르고 있다고 신문은 설명했다. 유럽으로 난민을 밀항시키는 터키 업체들은 유로와 달러로만 수수료를 받는다. 마약과 무기거래, 인신매매에도 유로가 쓰이고 있다.
다만 소비자의 지불 수단을 정부가 제한해서는 안 된다는 신중론도 여전하다. 전통적으로 현금을 중시하는 독일 과 북유럽 등에서는 소비자는 물론 여당 내에서도 반대 여론이 만만치 않다. 각국 정부는 테러와 범죄를 막으려면 규제가 필요하다고 설득에 나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