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아웅산 수치, 21년 만에 노벨상 연설한 사연은?
아웅산 수치 여사는 미얀마 민주화 운동의 산증인으로 꼽힌다. 그는 미얀마 건국의 아버지 아웅산 장군의 딸로 젊은 시절부터 조국 미얀마의 민주주의 확립을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독재 정권 하에 아웅산 수치의 이같은 행동은 미얀마 군부의 눈총을 샀다. 아웅산 수치를 눈엣 가시로 여겼던 군부는 1988년부터 24년간 그녀를 가택 연금시켰다.
1991년 미얀마 군부에 의해 가택 연금 상태에 놓여있던 시절, 아웅산 수치는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아웅산 수치 여사가 노벨 평화상을 받기 까지는 그녀의 남편 마이클 에리어스의 노력이 있었다. 마이클은 영국에서 군부의 탄압에 의해 고통받고 있는 미얀마인과 가택 연금으로 인해 자유를 뺏긴 아웅산 수치를 위해 노벨평화상 수상을 위한 준비를 진행했다.
노벨평화상위원회는 1991년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한 비폭력 투쟁’'에 대한 아웅산 수치의 공로를 들어 수상자로 선정한다. 수상자로 선정됐지만, 아웅산 수치는 집에 갇혀 있었다. 결국, 남편 마이클과 아들 알렉산더, 킴이 대리로 상을 받았다.
당시 아웅산 수치는 노벨상 상금 130만달러를 국민을 위한 보건 및 신탁 기금으로 사용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후 군부의 탄압은 더욱 거세지고, 그의 외부 활동에 제약은 심해졌다.
그러던 중 2012년, 아웅산 수치는 드디어 가택 연금에서 해방된다. '노벨상 역사상 가장 특별한 순간' 이라고 평가받은 21년 만의 노벨평화상 수락 연설이 세계에 중계됐다.
연설에서 그녀는 자신의 노벨상 수상이 '세계가 버마를 잊지 않았다는 증거' 라고 강조했다. 아웅산 수치는 "연금시절, 내가 더 이상 현실 세계의 일부가 아닌 것처럼 느껴졌지만 (평화상 수상은) 나에게 현실 감각을 회복시켜 인류 사회로 이끌어냈고, 무엇보다 버마의 민주주의와 인권 투쟁에 대한 전세계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라는 말로 소회를 밝혔다.
아웅산 수치의 노력은 곧 결실이 맺어질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25년 만에 치러진 미얀마의 자유 총선에서 아웅산 수치 여사가 이끄는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이 압승을 거두면서 단독 집권에 성공할 것이 유력하다. 이에 따라 반세기 동안 이어졌던 군부 지배가 종식될 것이란 기대감이 고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