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기업들이 파죽지세로 질주하고 있다. 일본 기업들은 불과 수년 전만 해도 장기 디플레이션과 글로벌 트렌드와 동떨어진 이른바 ‘갈라파고스화’ 등으로 몰락의 길을 걷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전자와 자동차 등 핵심 산업을 중심으로 실적 고공행진과 함께 침체의 터널을 빠져나와 화려한 부활을 알리고 있다.
소니와 파나소닉 등 일본 대표 전자기업들은 최근 실적 발표에서 ‘어닝서프라이즈’를 연출했다. 소니는 지난 9월 마감한 2015 회계연도 상반기에 1159억 엔(약 1조1000억원)의 순이익을 기록해 전년 동기의 기록적인 1090억 엔 순손실에서 흑자 전환했다. 소니가 흑자를 낸 것은 5년 만에 처음이다. 무엇보다 지난해 9월 1958년 상장 이후 처음으로 ‘무배당’을 결정하는 굴욕을 맛본 이후 불과 1년 만의 극적인 반전이어서 주목을 받았다.
파나소닉의 부활도 눈에 띈다. 파나소닉은 이번 회계연도 상반기(4~9월)에 순익이 1113억 엔으로 전년보다 38% 급증했다. 영업이익은 13% 늘어난 2004억 엔으로, 7년 만에 2000억 엔대를 회복했다.
자동차업계도 활력을 되찾았다. 일본 2위 자동차업체 닛산은 지난 2일(현지시간) 4~9월 순익이 전년 동기 대비 37.4% 급증한 3256억 엔을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회사는 내년 3월 마감하는 이번 회계연도 순익 전망치를 5350억 엔으로, 종전의 4850억 엔에서 상향 조정했다. 전망대로라면 닛산은 지난 2006년 이후 10년 만에 순익 사상 최대치 기록을 경신하게 된다.
세계 자동차 업계의 왕좌를 탈환한 도요타도 산하 8개 자회사 가운데 도요타통상을 제외한 7곳의 순익이 상반기에 증가세를 기록하는 등 순조로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자동차 에어컨과 센서 제조업체인 덴소가 상반기에 순익이 1130억 엔으로 1% 늘어났고 브레이크 등을 생산하는 아이신정기는 378억 엔으로 3% 증가했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지난달 30일까지 실적을 발표한 511개 상장사는 상반기 순익이 평균 16% 증가했다. 이들 기업 중 64%의 순익이 전년보다 늘었다.
일본 기업들의 성과가 주목받는 건 중국의 경기 둔화와 글로벌 금융시장 혼란 등 올해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놀라운 실적을 냈기 때문이다. 이들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등 재앙에 가까운 시련에 연달아 직면한 바 있다.
전문가들은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공격적인 경기부양책 ‘아베노믹스’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선진국의 경기회복, 유가 등 글로벌 원자재 가격 하락, 기업들의 뼈를 깎는 자구 노력 등 4박자가 어우러져 결실을 맺었다고 분석했다.
아베노믹스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연준)의 기준금리 인상 전망 등으로 미국 달러화 대비 엔화 가치는 1년 전의 113엔대에서 현재 120~121엔 선으로 후퇴했다. 미국은 고용시장 개선을 배경으로 자동차 판매가 올해 사상 최대치를 기록할 것으로 기대되는 등 소비가 견실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소니와 파나소닉 등 전자업계는 부진한 사업 매각 등 구조조정에 총력을 기울이면서도 선택과 집중 전략을 구사하며 핵심사업에 공격적으로 투자했다.
자동차업계도 마찬가지다. 도요타 산하 도요타자동직기는 지난달 30일 물류와 보안 등을 제공하는 두 개 자회사를 일본통운과 세콤 등에 총 1670억 엔에 매각한다고 밝혔다. 지난 2005~2007년에 사업 다각화 일환으로 이들 자회사를 사모펀드로부터 사들였지만 자동차 관련 사업에 초점을 맞추겠다는 ‘선택과 집중’전략에 따라 다시 매각한다고 회사 측은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