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과거 배임 혐의로 재판을 받은 기업인들이 받던 ‘정찰체’ 선고 형량이다. 그러나 2009년 배임죄에 대한 양형 기준이 생긴 이후에는 사정이 달라졌다. 재판에 넘겨진 재벌 총수들이 배임 혐의로 인해 법정 구속되고 실형을 선고받는 것은 이제는 낯선 풍경이 아니다. 재계에서는 배임죄의 성립 요건이 너무 포괄적인데다, 경영자의 판단이 존중돼야 할 영역에 국가가 형벌권으로 간섭하는 게 부당하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재계의 이러한 주장에 보수적 입장을 취했던 대법원이 최근 배임죄 적용을 엄격히 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대법원은 지난달 형사실무연구회를 통해 부동산 이중매매가 배임죄 적용 대상인지를 놓고 열띤 토론을 벌였다. 이미 부동산을 특정인에게 팔기로 하고, 계약금과 중도금을 받은 부동산 매도인이 원래 매수인이 아닌 제3자에게 부동산을 넘기는 것을 배임죄로 처벌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 사건은 대법관 전원이 심리에 참여하는 전원합의체에 회부돼 사건이 진행 중이다. 학계와 실무계 일부에서는 부동산을 파는 사람이 등기를 넘겨줄 의무는 ‘타인의 사무’가 아닌 ‘자신의 사무’이기 때문에 배임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대법원은 1963년 이후 50여년간 부동산을 이중매매하는 것은 배임죄로 처벌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부동산 매도의 경우에 한정되는 이번 사안이 주목받는 이유는 배임죄의 핵심 요건인 ‘타인의 사무’의 범위를 좁힐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배임죄는 다른 사람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로 부당한 재산상 이득을 취했을 때 성립한다.
재계에서는 이번 대법원 사건을 통해 ‘타인의 사무’ 요건을 엄격하게 해석하는 방향으로 판례가 정립돼 배임죄 처벌 범위가 좁혀지기를 바라고 있다. 또 다른 배임죄의 주요 성립 요건인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 부분에 대해서도 전향적인 검토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배임죄가 그동안 재계에서 문제가 됐던 이유는 경영상 판단에 따른 결정이 결과적으로 회사에 손해를 입혔을 때 형사처벌 대상이 됐기 때문이다. 가령 대기업 본사가 계열사 부실화를 막기 위해 자금을 지원하거나, 특정 사업에 거액을 투자했다가 손해를 본 경우도 배임죄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 대법원은 아직 ‘경영 판단의 원칙’을 판례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경영 판단의 원칙이란 회사의 이사나 임원들이 비록 회사에 손해를 끼치는 행위를 했더라도, 고의 없이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를 다하고 그 권한 내의 행위를 했다면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이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