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년 역사에 연매출 6조 엔(약 56조원)을 자랑하는 일본 명문기업 도시바의 분식회계 파문으로 아베 신조 총리의 경제회생책 아베노믹스가 휘청거리게 됐다고 23일(현지시간) 니혼게이자이신문이 보도했다.
1500억 엔에 이르는 분식회계 스캔들로 최근 10년간 도시바를 이끈 전·현직 최고경영자(CEO) 3명이 동시에 사임하는 이례적인 일도 발생했다. 도시바 파문은 자본시장과 기업계에 머무르지 않고 정계로도 확산하고 있다고 신문은 전했다. 지난 1996년부터 2000년까지 도시바 사장을 지내고 현재도 고문으로 있는 다이조 니시무로 일본우정그룹사장은 “절대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며 “매우 충격적이며 슬프다”고 한탄했다. 그는 전날 밤 총리 관저에서 열린 전후 70주년 담화에 관한 지식인 회의 만찬석상에서 아베 총리에게 “도시바를 책임지고 재생시키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이번 불상사가 한 기업의 테두리를 넘어 아베 정권의 간판정책인 아베노믹스에 먹칠을 할 수 있다는 불안감을 완화하려 한 것이라고 신문은 풀이했다.
일본 정부가 지난해 제시한 아베노믹스의 세 번째 화살인 성장전략의 가장 첫 머리에 나온 것이 바로 ‘기업 지배구조 강화’다. 첫 번째 화살인 금융완화, 두 번째 화살 재정 확대의 약발이 떨어지는 시점에서 지배구조 강화를 통해 기업 실적과 주가를 동시에 끌어올린다는 전략이다. 아소 다로 부총리 겸 재무상이 “한 회사(도시바)가 나쁘면 일본시장 전체가 나쁘다는 것”이라고 질책했던 것도 이런 배경이 있다.
도시바 분식회계 파문을 조사한 제3자위원회는 ‘기업 지배구조의 기능 장애’가 원인이라고 질타했다. 특히 도시바는 지난 2003년 사외이사가 중심이 돼 경영을 감독하는 위원회를 설치하는 등 기업 지배구조 강화의 우등생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그만큼 충격이 컸다.
도시바 문제는 올 가을 기업공개(IPO)를 앞둔 일본우정그룹에도 미묘한 그림자를 드리웠다. 당초 우정그룹은 도시바 상임고문인 무라오카 후미오를 사외이사로 끌어들이려고 했지만 총무성이 지난달 26일 주주총회에서 이를 차단했다. 분식회계 조사 리스트에 무라오카의 이름이 올라왔기 때문.
우정그룹 상장은 약 10조 엔 규모로 1987년 NTT 이후 가장 큰 민영화 안건이다. 증시에 투자자금을 끌여들여 경제를 활성화하려는 아베노믹스의 또 다른 핵심정책이기 때문에 실패가 허용되지 않는다.
일본 주식의 30%를 가진 해외 투자자 사이에서 이 문제를 계기로 일본 기업 전체 지배구조에 대한 불신이 확산될 것이라는 우려도 고조되고 있다.
도시바 주가는 분식회계가 처음으로 포착된 4월 3일 이후 20% 하락했다. 이에 시가총액 약 5000억 엔이 증발했으며 손해를 보게 된 미국 투자자 사이에서 도시바 제소 움직임도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