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찬 칼럼] 대학평가에 휘둘리지 말자

입력 2015-06-17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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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 전 국무총리

한 고등학생이 “서연고 서성한 중경외시”라고 중얼거리는 걸 들었다. 대학의 앞 글자를 따서 순위대로 나열한 것이다. 서울대의 서, 연세대의 연, 고려대의 고를 따서 엮는 식으로 말이다. 대학의 순위경쟁이 한창이다. 10년 전부터는 세계대학평가기관이 순위를 발표하면서 더욱 심해졌다.

대학의 순위경쟁은 여러 기관에서 시행하는 대학평가에서의 순위 다툼을 말한다. 세계대학순위 평가로는 영국의 Quacquarelli Symonds(QS) Ltd.가 발표하는 QS 세계대학평가가 있고, 국내에는 매년 중앙일보가 발표하는 중앙일보 대학평가가 있다. 여기에 더해, 조선일보와 QS사가 함께 발표하는 아시아대학평가까지, 수개의 평가가 우리나라 대학 운영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 같은 평가에서 국내 대학들은 ‘선전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실제로 QS사에서 평가가 실시된 첫해인 2004년에 서울대학교는 118위를 기록했으나 2006년 63위, 2010년 50위, 2014년에는 31위 등의 순위가 매겨졌다. 서울대뿐만 아니라 여러 한국 대학의 순위가 상승세를 타고 있다.

기분 좋은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 이상의 의미를 줄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순위를 매길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기준일 것이다. 정확한 기준 없이 순위를 매기는 것은 의미가 없다. 또 중요한 것은 경쟁의 과정일 것이다. 부당한 경쟁이나 편법적인 방법으로 얻은 결과는 그 의미가 퇴색할 수밖에 없다.

과연 대학평가는 정확한 기준과 과정의 공정성을 갖췄을까? QS 세계대학평가를 예로 들어보자. QS사가 순위를 산출하는 데 사용하는 기준은 교수 1인당 논문 피인용 수(20%), 학계 평가(40%), 졸업생 평가(10%), 교수 1인당 학생 수(20%), 외국인 학생 비율(5%), 외국인 교수 비율(5%) 등이다. 과연 이러한 기준으로 어느 한 대학이 다른 대학보다 우수하다는 것을 측정할 수 있을까?

‘순위’라는 단어가 풍기는 정량적 뉘앙스와 달리 50%의 평가 기준이 학계 평가와 졸업생 평가처럼 정성적(定性的)이다. 그리고 이러한 학계 평가와 졸업생 평가는 주로 공개되지 않은 영미 사람들을 대상으로 실시된 설문조사를 바탕으로 한다.

한 예로 2008년에는 독일인이 182명일 때 영국인은 563명으로 약 3배 영국 응답자가 많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2013년 상위 10개 대학 중 4개 학교가 영국 대학인 점, 고용 가능성 상위 10개 대학 중 절반인 5개 학교가 영국 대학인 점을 연결 지어 보면 평가의 공정성에 의심이 가지 않을 수 없다. 영국 교육청은 이러한 랭킹을 홍보자료에 적극적으로 사용, 세계대학평가를 영국(계) 학교의 학생 유치에 이용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의심도 든다.

문제는 우리나라 대학들이 맹목적으로 순위 높이기에 매달리고 있다는 점이다. 대학평가가 나타내는 것이 무엇인지 깊은 고민 없이 먼저 순위부터 올리고 보자는 식으로 접근하는 것은 위험하다. 대학 일선에서는 교수들이 학생의 교육은 뒷전으로 하고 논문 수 또는 피인용 수 높이기에 여념이 없다는 비판이 들려온다. 또한 최근 들어 부쩍 늘어난 외국인 학생들이, 5%라는 비중의 점수를 올리기 위해 초대된 손님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이러한 순위 올리기에 대학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 대학의 본질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하버드대의 파우스트 총장은 이렇게 말했다. “대학의 본질은 인생을 만들어가는 가르침에 있고, 오래된 유산을 전달하는 가르침에 있으며, 또한 미래를 설계하는 가르침에 있다.” 과거의 발자취에 대해 객관적이고 엄정한 평가를 내리는 것과 미래를 내다보고 올바른 길로 사회를 인도하는 것은 시대의 지성인들이 모인 대학이 맡아야 할 역할이다. 눈에 보이는 현상을 따라가기에만 급급한 대학은 대학의 본질을 잊은 것이나 다름없다.

낮은 평가를 받을까 봐 흔들릴 것이 아니라, 굳은 신념을 갖고 시간을 초월하는 가치를 보존하는 대학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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