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주제로 어느 대기업의 문고리 권력 얘기를 잡아봤다. 동서고금의 역사를 보면 궁궐에서 ‘문고리 권력’을 장악한 환관의 위세는 왕후장상 부럽지 않았다. 권력을 등에 업고 일가 친인척들이 대대손손 호사와 영달을 누렸으니 말이다.
지난 연말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사건도 ‘문고리 권력’이 진원지다. 문고리 권력이란 권세가에게 빌붙어 권세가 이상의 행동으로 실리를 취하는 실세 중의 실세를 빗댄 신조어다. 국가 권력자의 최정점에서 보좌하는 인물들이 호가호위(狐假虎威)하는 것을 비꼰 사자성어다.
필자가 고민 끝에 문고리 권력을 화두로 던진 이유는 하나다. 국가뿐만 아니라 일반기업에서도 문고리 권력이 암암리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얼마전 한 지인과 술자리에서 나눈 대화는 어느 대기업의 문고리 권력이 주제였다.
그 지인은 A그룹 내에 문고리 권력 4인방이 있는데 회장의 귀와 눈을 막고 있다며 사뭇 진지한 대화를 시작했다. 그러면서 그는 그룹의 회장도 그들의 얘기를 귀담아 듣다 보니 냉정한 판단을 내리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 것 같다며 안타까워했다.
A그룹의 문고리 권력으로 거론된 인물은 L씨, J씨, O씨, N씨 등 4명이라고 한다. 현재 그룹 내에서 입지가 대단해 ‘문고리 권력 4인방’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그룹 내에서도 그들을 언급하는 것 자체를 부담스러워하는 눈치다.
문고리 권력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이로 인해 국가를 망친 주범으로 역사에 기록되는 수모를 겪는 사례도 있다.
대표적으로 진나라 때 조고는 문고리 권력의 폐단을 극단적으로 보여줬다. 환관 조고는 태자 부소에게 왕위를 물려주라는 진시황의 유언을 조작해 어린 호해를 왕위에 앉히고, 국정에서 이익을 독차지해 진나라를 멸망의 길로 몰아넣은 장본인이다. 호해 앞에 사슴 한 마리를 데려와 말이라고 우겨 지록위마의 고사를 남긴 인물이다.
하물며 일반기업의 결과는 어떻게 되겠는가.
일본의 환관 연구자로 잘 알려진 미타무라 다이스케 전 리쓰메이칸대 명예교수는 ‘환관 이야기-측근 정치의 구조’라는 책에서 “기업이든 국가든 권력에 직속한 채 권력자에게 정확한 정보를 전할 능력이 없는 측근 때문에 발생하는 피해가 얼마나 큰지는 두말할 필요도 없다”고 꼬집고 있다.
그는 “권력에 직속해 정보를 독점하는 측근 그룹에 내포된 환관적 존재는 현대와도 무관한 것은 아니다”라며 지금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워주고 있다.
당나라 태종의 업적을 기록한 오긍의 정관정요에는 ‘이창업(易創業) 난수성(難守成)’이란 글귀가 나온다. 일을 시작하기는 쉬우나 이룬 것을 지키기는 어렵다는 의미다. 하지만 필자는 잘 이뤄낸 성과를 계속 발전시키려면 좋은 인재를 가까이 하고, 간신배들을 멀리하라는 경구로 받아들이고 있다.
한때 승승장구하며 잘 나가던 국가가 한순간 몰락한 이면에는 인재를 잘못 쓴 경우가 적지 않다. 국가도 그렇거니와 기업 역시 주변인재를 어떻게 제대로 쓰느냐에 따라 흥망성쇠가 달렸다. 너무도 평범한 진리이지만 지금 누군가는 잊고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