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을 비롯한 도심에 과실나무를 심고 가꾸는 낭만을 상상해보자. 생각만으로도 힐링이 되지 않는가. 봄에는 예쁜 꽃을 보고 여름이면 녹음 아래 평상에 잠시 걸터앉아 부채질로 더위를 식히며, 가을이면 탐스럽게 익어가는 과실을 바라보며 군침을 삼키고 단풍으로 물든 가로수 길을 걸으며 연인과 추억을 만들어보는 것이 곧 힐링 아니겠는가.
도심 속 빈 터에 과실나무 심기는 미국의 시애틀에서부터 시작됐다. 연방정부는 1차 세계대전 후 각 가정에서 쉽게 가꾸고 따 먹을 수 있는 과실나무 심기를 권장했다. 그후 영국 토드몰덴, 독일 하이델베르크, 스위스 취리히 등 유럽 도시들로 유행처럼 퍼져 나갔다. 특히 독일 베를린에서는 기존 가로수 대신 과실나무 심기를 의무화해 ‘맛보는 도시’ 프로젝트를 추진해 공원, 보행로, 학교, 체육시설 등 공공시설의 주변 녹화를 위해 과실나무를 심었다.
우리나라에서도 몇몇 지방도시에서 그 지방의 특산품 홍보와 관광객 유치를 위해 과실나무를 심고 있다. 충북 충주시 달천로변은 사과나무의 명소로 자리 잡았다. 충북 영동은 곶감 주산지로 1975년부터 심은 30여㎞ 가로변의 감나무 숲은 국내에서 가장 아름다운 ‘거리숲’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또한 충북 보은은 조선시대 임금께 진상한 ‘보은대추’의 우수성을 홍보하기 위해 대추나무 가로수 길을 조성했으며 10월에는 ‘대추축제’도 열린다. 경북 청도는 곶감용 품종인 반시(盤枾)가 유명해 가을이면 감나무 길에 주렁주렁 달린 주황색 감을 보기 위해 관광객이 넘쳐난다. 전남 영암은 20㎞ 가로변에 감나무를 심어 지역 특산품인 ‘대봉감’을 홍보하고 있다. 감귤섬 제주도는 공항 진입로와 서귀포 가로변에 감귤나무를 가로수로 심어 제주도만의 이색적 풍경을 자아내는 데 성공했다.
우리가 사는 도심에 사과, 배, 감 등의 과실나무를 심을 장소는 찾아보면 여러 곳이 있다. 가로변이 아니더라도 도심 속 공원의 빈터, 산책로, 유휴지, 아파트 등의 녹지 구역과 병원, 학교, 관공서, 체육시설 등 공공시설물 주변이다. 요즘 각 지역에서 생태관광이나 힐링을 위해 조성되고 있는 둘레길의 요소요소, 그리고 국립공원이나 도립공원의 입구 공터에도 과실나무를 심을 수 있다.
단, 과실나무를 심을 때 한 가지 유의할 점이 있다. 심는 장소는 가능한 햇빛이 잘 드는 곳을 택하고 키가 큰 나무가 있으면 큰 나무 앞쪽에 심는 것이 꽃이 피고 열매가 달리는 데 유리하다. 흔히 과실나무를 심으면 병해충 방제를 위해 약제 뿌리기나 비료 주기 등의 관리가 어려워 망설이는 때도 있으나 그냥 내버려 둬도 꽃이 잘 피고 열매를 맺는 나무들이 많다. 감나무, 대추나무, 살구나무, 자두나무, 매실나무, 모과나무, 머루, 다래나무 등으로, 이들 나무는 심을 때 유기질 비료만 조금 주면 그 이후에는 특별히 관리하지 않아도 잘 자란다.
올봄에는 우리가 사는 도심 주변 곳곳에 감나무, 대추나무, 모과나무와 같은 과실나무를 심어보자. 그래서 꽃이 피고 열매가 맺고 익으면 거두는 자연의 섭리와 4계절의 변화를 아이들과 함께 도심에서 느껴보자. 그 길을 걸으며 우리의 꿈과 희망, 사랑과 낭만, 그리고 힐링의 열매도 잘 영글도록 함께 키워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