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렌즈] FTX 해커 물량 매도 압력에 살얼음판 걷는 코인 시장

입력 2022-12-03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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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TX 해커가 가상자산 시장의 고래(대형 투자자)가 되면서 투자자들의 심리가 얼어붙었다.(게티이미지뱅크)
▲FTX 해커가 가상자산 시장의 고래(대형 투자자)가 되면서 투자자들의 심리가 얼어붙었다.(게티이미지뱅크)

파산절차를 밟고 있는 가상자산(암호화폐) 거래소 FTX에서 거액의 코인을 탈취한 해커가 시장의 방향을 결정하는 열쇠를 쥐게 됐다. FTX 해커가 훔친 물량은 총 22만8523이더(ETH)였는데, 6만5000여 이더가 인출됐지만, 아직도 18만 이더가 지갑에 남아있다. 보유 이더리움을 비트코인으로 전환했던 지난달 20일 이더리움은 4% 하락했고, 순간적으로 직전 저점인 1075.00달러까지 추락했다.

하락장 최대 매도 세력

2일 이더스캔에 따르면 FTX 해커가 코인을 옮긴 지갑 주소(FTX Accounts Drainer)엔 총 18만 이더가 남아있다.

이 해커는 지난달 20일부터 이틀간 총 5차례에 걸쳐 6만5000이더를 이더리움 플랫폼내 생성된 비트코인인 렌비트코인(RenBTC)으로 전환했다.

당시 거래로 이더리움 가격은 이틀 간 11.33% 급락했다. 해커가 시장의 주요 매도자가 된 셈이다.

올해 5월에도 해커의 현금화가 시장을 끌어내리는 매도 압력이 된 적이 있다. 블록체인 게임 엑시인피니티를 구동하던 로닌 네트워크에서 이더리움 17만3000이더가 도난당했다. 당시 6억2500만 달러(약 7560억 원) 규모였는데, 이 물량이 추적 회피용 거래소 토네이도캐시를 통해 시장에 풀렸다.

2월엔 웜홀 토큰 브리지에서 이더리움 12만 개(당시 3억2100만 달러)가 탈취당했다. 두 해킹 사건에서 도난당한 후 시장에 풀린 코인이 1조 원에 육박한다.

FTX가 아직 현금화하지 않은 이더리움 물량의 가치는 3110억 원 규모다. 대형 투자자들이 공시나 사전 계획을 통해 미리 알리는 것과 달리, 해커의 현금화 시점은 예측할 수 없다. 이는 투자심리를 위축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올해에만 10만개 이상의 이더리움이 탈취되는 사고가 세 번이나 일어났다.(게티이미지뱅크)
▲올해에만 10만개 이상의 이더리움이 탈취되는 사고가 세 번이나 일어났다.(게티이미지뱅크)

비트코인 못 버티면 채굴자들 매물 연쇄

FTX 해커는 탈취 코인을 전액 이더리움으로 전환한 뒤 다시 렌비트코인으로 전환하고, 이를 다시 현금화하는 방식을 취할 것으로 예상된다. 비트코인 형태로 보유했다 해서 시장이 마냥 안심할 수만은 없다. 만약 현금화가 시작되면 비트코인 가격이 하락하게 되고, 이는 전체 시장의 동반 하락으로 연결된다. 게다가 약세장에서 알트코인(비트코인 외 코인)은 비트코인의 하락률보다 크게 떨어진다.

문제는 비트코인이 가격이 계속 하락하면서 채굴 채산성도 악화하고 있단 점이다. 더 블록 리서치에 따르면 지난달 비트코인 채굴자 총수입은 4억7264만 달러로 전월 대비 19.9% 감소했다. 국제 경제 위기로 에너지 가격은 늘어나는데, 비트코인 가격은 떨어지는 이중고를 겪고 있는 셈이다.

현재 비트코인 가격보다 채굴에 필요한 비용이 높은 상태라고 한다. 경제 데이터 제공 플랫폼 매크로마이크로에 따르면 비트코인 채굴 비용은 1만9356달러(11월 30일 기준)로 현물 시장 가치 약 1만7000달러를 상회한다.

채굴자들의 적자 상태가 계속되면서 심지어 담보로 제공한 채굴기를 반환하는 사례까지 나타났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채무불이행 위기에 빠진 코인 채굴자들이 가상자산 대출기관들에 담보로 잡힌 채굴기 수십만 대를 보내고 있다. 이들 대출업체는 뉴욕디지털인베스트먼트그룹(NYDIG), 셀시우스, 블록파이, 갤럭시디지털, 디지털커런시그룹(DCG)의 파운드리 등이다.

채굴자들의 위기는 비단 채굴 산업에서 끝나지 않는다. 채굴자들의 매도 물량이 시세 하락으로 이어지며, 하락의 소용돌이에 빠져들기 때문이다.

온체인 분석가 IT테크는 트위터를 통해 “대형 비트코인 채굴 연합 ‘풀인’에서 1만 비트코인이 유출됐다”며 “채굴자들이 보유량 일부를 동시에 이동하면 비트코인 가격이 하락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최근 비트코인 채굴자들은 전기요금 상승과 코인 가격 하락이라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게티이미지뱅크)
▲최근 비트코인 채굴자들은 전기요금 상승과 코인 가격 하락이라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게티이미지뱅크)

1년은 더 버텨야 한다

지난해 11월 10일 사상 최고가인 6만9000달러를 기록했던 비트코인은 1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 약세를 보인다. 차트 제공 사이트 트레이딩뷰에 따르면 과거 2018년 1월 시작된 상승장은 약 1년간 하락한 후 다시 1년 횡보했다. 2013년 일본 가상자산 거래소 마운트곡스의 해킹 때도 약 2년의 세월이 걸렸다.

이런 시나리오대로라면 다음 상승장의 시작은 2024년 초까지 기다려야 하는 셈이다.

무엇보다 FTX의 무분별한 고객 자금 유용과 고위험 투자를 제대로 규제하지 못했다는 정부의 부정적 시각이 코인시장을 억제할 것으로 보인다.

유럽중앙은행(ECB) 공식 블로그에 ‘비트코인의 최후의 저항’이라는 제목의 글을 게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ECB는 “비트코인 가치의 안정화는 가상자산이 무의미한 길을 걷기 전 인위적으로 유도된 마지막 헐떡거림일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이 글에는 “비트코인은 법적 거래에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투자용으로 적합하지 않다” “채굴에는 많은 전기가 쓰인다” “합법화해선 안 된다” “금융 업계가 비트코인 투자에 나설 때 장기적으로 피해를 입을 수 있다” 등의 부정적인 내용이 주를 이뤘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듯 가상자산 투자자들의 심리는 얼어붙어 있다.

코인니스와 크라토스가 공동 진행한 주간 국내 투자자 시장 동향 정기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7.7%가 이번 주 비트코인 가격이 횡보 또는 하락할 것으로 전망했다.

시장에 대한 심리를 묻자 45.6% 이상이 공포 또는 극단적 공포라고 응답했다. 낙관이라고 답한 비중은 11.8%에 불과했다. 이번 조사 응답자 수는 2000명으로 11월 22일~11월 24일간 진행됐다. 표본오차는±3.0%, 신뢰도는 95%다. 조사기관은 주식회사 파로스랩스(크라토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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