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약품의 오랜 연구개발(R&D) 노력이 열매를 맺고 있다. 초대형 기술수출, 잇따른 권리반환, 허가 과정의 우여곡절 등 굴곡을 지나 미국 식품의약국(FDA) 문턱을 넘으면서 세간의 우려는 단숨에 기대로 바뀌었다.
첫 번째 글로벌 신약 ‘롤론티스’에 이어 곧바로 2호 신약 허가를 앞둔 가운데 한미약품의 수많은 후속 파이프라인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오는 11월 FDA 허가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포지오티닙’은 한미약품이 개발한 HER2 엑손20(Exon20)변이 비소세포폐암 치료제로, 2015년 스펙트럼에 기술수출됐다. 지금까지 포지오티닙과 같은 적응증으로 FDA가 승인한 치료제가 없어 허가받으면 해당 환자를 위한 첫 번째 치료제가 된다.
스펙트럼은 최근 유럽종양학회(ESMO)에서 고무적인 임상 결과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과거 비소세포폐암이 있었던 환자의 객관적반응률(ORR)은 100%, 치료경험이 없던 환자의 ORR은 71.4%를 기록해 전체 ORR 85.7%를 달성했다. 긍정적인 데이터가 추가하면서 포지오티닙의 허가 역시 순항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한미약품은 올해 1월 스펙트럼에 240억 원 규모의 전략적 지분투자를 단행하면서 스펙트럼의 지분율을 10%대로 확대했다. 이와 더불어 롤론티스와 포지오티닙에 대한 라이선스 계약의 마일스톤과 로열티 조건을 변경했다. 스펙트럼의 상업화 비용 부담을 줄여주고, 본격적으로 발생할 판매수익을 폭넓게 나눠 갖기 위해서다. 포지오티닙의 경우 시판허가에 따라 받는 마일스톤을 추가 로열티 충당 방식으로 바꿔 연간 순매출액의 두 자릿수 후반대 비율로 유지하다가 마일스톤 금액을 충족하면 이를 두 자릿수 중반대로 조정하기로 했다.
롤론티스의 FDA 허가로 한미약품은 핵심 플랫폼기술 ‘랩스커버리’의 상용화 가능성을 입증했다. 랩스커버리는 바이오의약품의 반감기를 늘리는 기술이다. 약의 투여 횟수와 양을 줄여 환자의 삶의 질을 향상하고, 부작용 우려를 개선할 수 있다.
랩스커버리는 한미약품이 개발 중인 10여 개 신약 파이프라인에 적용돼 있다. 롤론티스 허가를 계기로 랩스커버리를 둘러싼 의구심을 떨쳐버리고, 이들 파이프라인의 가치가 동반 상승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조만간 임상 2상 결과를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는 트리플 아고니스트(Triple agonist) 기전의 비알콜성 지방간염(NASH) 치료제 ‘HM15211’에도 랩스커버리가 적용됐다.
HM15211은 단일 타깃 경구 치료제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3중(글루카곤/GIP/GLP-1) 작용제이다. 글루카곤은 직접 지방간을 줄이고 섬유화를 억제하며, GLP-1은 인슐린 분비와 식욕 억제를 돕는다. GIP는 인슐린 분비와 항염증 작용으로 이들을 동시에 활성화해 지방간과 염증, 섬유화를 한 번에 대응할 수 있다. 2020년 FDA 패스트트랙에 지정된 바 있다.
또한 글로벌 제약사 엠에스디(MSD)로 기술수출된 NASH 치료제 ‘에피노페그듀타이드(MK-6024)’ 역시 랩스커버리가 적용됐다. GLP/글루카곤 수용체 듀얼 아고니스트(Dual agonist)인 에피노페그듀타이드는 GLP-1과 글루카곤을 동시에 활성화하는 이중작용 치료제로, 임상 2a상 결과 발표를 앞두고 있다.
스펙트럼은 롤론티스를 ‘롤베돈(Rolvedon)’이란 이름으로 4분기부터 미국에 출시한다. 호중구감소증은 고형암이나 악성 림프종 환자가 세포독성화학요법을 투여한 후 혈액 내 호중구가 감소해 생기는 질병으로 미국 시장 규모만 3조 원대로 추산된다.
이 시장은 1주 제형인 암젠의 ‘뉴라스타’가 주도했지만, 특허만료로 바이오시밀러들이 출시돼 경쟁을 벌이고 있다. 후발 주자로 롤베돈이 뛰어드는 만큼 스펙트럼의 영업·마케팅력이 매출 성장을 판가름할 것으로 보인다.
롤베돈은 항암 치료 후 24시간 뒤 처방이 가능하며, 주삿바늘 안전덮개를 적용해 편의성을 개선했다. 또한, 3주 간격으로 투약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추가적인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당일 투약을 위한 임상 1상을 진행 중이며, 림프종과 고형암 17세 미만 환자 대상 임상 2상을 통해 적응증 확대도 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