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천(司馬遷)이 다스림에 대한 자기 생각을 사기(史記) 혹리열전서(酷吏列傳序)에 밝혀놓았다. “이때에는 관리들이 마치 섶을 지고 불을 끄고 끓는 물을 부어 끓는 물을 식히려 하는 것과 같았으니[當是之時 吏使若救火揚沸], 굳세고 엄혹함이 아니라면 어찌 그 임무를 이겨내고 즐거울 수 있었겠는가! 도덕을 말하는 자들도 그들의 직분을 감당할 수 없었다.”...
사마천(司馬遷)이 사기(史記) 여불위열전(呂不韋列傳)에서 비평한 말에서 유래했다. “진시황 즉위 후 상국(相國) 자리에 오른 여불위가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력을 행사했다.” 여불위가 자결한 이후 무소불위의 대명사 진시황, 2세 황제 호해, 천하의 간신 조고의 무소불위 폭정으로 결국 진(秦)은 멸망하고 만다. 무소불위의 권세, 권력은 절대권력자나 독재자가...
사마천(司馬遷)이 사기(史記)에 평원군을 평한 말이다. “그는 능력과 지혜가 빛났던 공자였지만 나라를 다스리는 이치에는 어두웠다. 이익은 지혜를 어둡게 한다[利令智昏]고 했는데 잘못 판단해 40만 군사를 잃고 도읍인 한단(邯鄲)마저 잃을 뻔했다.”
☆ 시사상식 / 레드넥(Redneck)
Red와 Neck의 합성어. 미국 남부 농촌의 교육 수준이 낮고 보수적이고 완고한 사람들을...
이 말은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 위세가(魏世家)에 나온다. 위(魏)나라 문후(文侯)가 재상 임명을 위해 이극(李克)에게 조언을 요청하며 한 말. “선생께서 과인에게 말씀하시길 집안이 가난하면 어진 아내를 그리게 되고[家貧思良妻] 나라가 혼란하면 훌륭한 재상을 그리게 된다(國亂思良相)고 하셨다. 제 동생인 성자(成子)와 적황(翟璜) 중, 어떤 이가 나라의...
‘사기(史記)’를 쓴 사마천(司馬遷)의 보임소경서(報任少卿書)에서 유래했다. 궁형(宮刑)을 당한 사마천은 ‘사기’ 저술에 몰두했다. 친구인 임안(任安)에게 보낸 편지가 ‘보임소경서’다. 소경은 임안의 자다.
그는 “사람은 본래 한 번 죽는 것인데, 그 죽음이 혹은 태산처럼 무겁고 혹은 깃털처럼 가벼운 것은 그 지향하는 바가 다르기 때문이다[人固有一死...
한무제(漢武帝)가 흉노 토벌에 나섰다가 항복한 이릉(李陵)을 논죄할 때 사마천(司馬遷)이 변호에 나섰다. 화난 무제가 그를 궁형(宮刑)에 처했다. 사마천이 친구 임안(任安)에게 보낸 편지에 나온다. “궁형을 당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네만 나 죽는 일쯤은 ‘소 아홉 마리에서 빠진 털 하나’와 같으니 죽어 봤자 개미 한 마리가 없어진 듯, 누구도...
중국 사마천이 쓴 책 '사기'의 '이장군 열전'에 따르면 이광 장군은 집안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궁술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다. 그가 활을 쏘았다 하면 활시위 소리와 함께 적들이 쓰러졌다.
어느 날 그가 사냥하는데 바로 앞에 호랑이가 나타나 활을 맞췄다. 그런데 호랑이는 꼼짝도 하지 않았고, 가까이 가 보니 호랑이 모양의 바위에 화살이 박혀 있었다. 이에 놀라...
특히 사마천 ‘사기(史記)’의 ‘화식열전(貨殖列傳)’에서 중국 상업 전통의 단초를 발견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대개 ‘상업’이라 하면 ‘장사’라는 좁은 의미로 간주하면서 그것을 폄하하는 경향이 강하다. 하지만 이 ‘상업’이라는 용어는 실은 보다 광의의 의미로서 사업 혹은 경제경영과 동일한 함의를 지니는 용어로 사용된다.
“마치 물이 아래로...
그의 재산은 탁씨에 견줄 만하였는데, 탁씨와 정정은 모두 임공에 살았다.”(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 ‘화식열전(貨殖列傳)’)정정은 야철과 함께 구리 주조를 하여 당시 탁씨와 정정은 천하의 구리와 철을 모두 차지했다는 소문이 널리 퍼졌다.
훗날 서한의 저명한 문인 사마상여(司馬相如)의 장인 탁왕손(卓王孫)은 바로 촉 탁씨의 후손이었다. 사서(史書)들은 한나라...
사마천(司馬遷)이 친구 임안(任安)에게 보낸 편지 ‘보임소경서(報任少卿書)’에 나온다. “선비는 땅에 금을 그어 만든 감옥이라도 선비의 기세로 들어가서는 안 되며, 나무를 깎아 만든 형리일지라도 심문에 응한다고 대답해서는 안 되는 것이니, 이는 미리 마음을 분명하게 정하였기 때문이다[士有劃地爲牢 勢不可入 削木爲吏 議不可對 定計於鮮也]”. 그가 궁형(宮刑)...
‘사기’의 저자 사마천은 진시황이 바로 여불위(呂不韋)의 사생아라는 점을 확신하면서 이 사실을 사기 열전 ‘여불위전’에서 분명히 기록하고 있다.
여불위는 전국시대 한(韓)나라 대도시인 양책(陽責)의 대상인이었다. 여러 나라를 왕래하며 값이 쌀 때 물건을 사놓았다가 시기를 보아 비쌀 때 파는 방법으로 천금의 재산을 모았다. 그는 여러 나라를 돌아다녀 견문이...
한편 사마천은 공자가 관중을 과소평가하는 점에 대해 “옛말에 ‘군주를 보좌하여 그 미덕을 발양시키고 그의 과오를 바로잡음으로 상하가 곧 서로 가까워질 수 있다’고 했는데, 이런 사람이 바로 관중이 아닌가?”라며 반론을 제기하였다. 사마천은 “연못이 깊어야 물고기가 생기고 산이 깊어야 짐승이 모이듯이, 사람도 부유할 때 비로소 인의가 생겨나는 것이다”고...
사마천은 사기(史記) 화식열전(貨殖列傳)에서 모두 52명의 화식가들을 선정하여 기술하고 있는 중에 여성 부호는 단 한 명만 소개하고 있다. 바로 파과부(巴寡婦) 청(淸), 즉 파촉(巴蜀) 지역에 살았던 청(淸)이라는 과부 여성이다. 이 파과부 청이라는 여성이야말로 중국 최초의 여성 부호이다.
단사 채굴과 수은, 그리고 진시황
파과부 청의 조상은 대대로 야금(冶金)...
목숨 건 희생과 과감한 실천, 역사와 사회에 공헌
최초로 인물 중심의 기전체(紀傳體) 역사를 기술하여 ‘열전(列傳)’이라는 형식의 ‘인재론’을 창시한 사마천이 인물을 선정한 기준은 결코 지위의 높고 낮음이라는 일반적인 기준이 아니었다. 그의 인물 선정 기준은 바로 ‘그 인물이 어려운 처지를 어떻게 극복하고 분발하여 역사와 사회에 뚜렷한 공헌을...
사마천의 ‘사기(史記)’ 제도혜왕세가(齊悼惠王世家)에는 “마땅히 끊어야 할 때 끊지 않으면 도리어 끊지 않은 것이 만들어 내는 혼란을 받게 된다”는 말이 있다. 원문은 “당단부단當斷不斷, 반수기란反受其亂”이다. 각 글자는 ‘마땅 당(當)’, ‘끊을 단(斷)’, ‘아니 불(不)’, ‘도리어 반(反)’, ‘받을 수(受)’, ‘그 기(其)’, ‘어지러울 란(亂)’이다. 1965년 6월...
중국의 역사가 사마천은 '그 군주가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겠거든 그가 기용하는 사람을 보라'고 말했다. 기업들은 핵심 인재를 찾는데 혈안이 돼 있다. 인재를 찾아오는 사람에겐 인센티브를 지급하겠다는 그룹들도 있다. 인사는 그만큼 어렵다. 하지만 인사가 만사라는 말엔 사람을 잘 쓰면 모든 일이 잘 풀린다는 의미도 담겨 있다.
기업들은 인사 검증...
사마천은 사기 ‘월왕구천세가(越王句踐世家)’ 편에서 범려가 남긴 탁월한 역사적 역할을 예리하게 묘사하고, 이어 ‘화식열전’ 편에서도 그 첫 번째 인물로 범려를 선정하여 기술하면서 시종 그를 마땅히 본받아야 할 모범으로 칭송하면서 높이 평가하였다.
“범려는 19년 동안 천금의 재산을 세 번씩이나 모았으나 그중 두 번은 가난한 벗들과 일가친척에게 나누어...
이 어찌 ‘도(道)’와 자연의 효험이 아니라는 말인가?”
바로 사마천이 지은 ‘사기(史記)’의 ‘화식열전(貨殖列傳)’ 편에 나오는 내용이다. ‘화식(貨殖)’이란 ‘재산을 늘림’ 혹은 ‘상공업의 경영’이라는 의미이다. 사마천이 지칭하는 화식에는 이밖에도 각종 수공업과 농어업, 목축업, 광산, 제련 등의 경영을 포함하고 있다.
사마천을 단지 ‘사기’를...
부자가 명성과 지위를 함께 얻으려면
사마천은 사기 ‘화식열전(貨殖列傳)’ 편에서 자공에 대하여 이렇게 논평하고 있다.
“자공은 공자로부터 학문을 익힌 후 위나라에서 벼슬을 하였다. 그는 물건을 비축하여 조나라와 노나라 일대에서 비싼 물건을 팔고 싼 물건을 사들이는 방법으로 상업을 하여 공자의 우수한 70제자 중에서 그가 가장 부유하다고 할 수 있었다....
게다가 세상은 흐르는 물살처럼 오로지 권세와 이익에만 수없이 찾아가서 부탁하는 것이 상례인데 그대는 많은 고생을 하여 겨우 손에 넣은 그 책들을 권세가에게 기증하지 않고 바다 바깥에 있는 초췌하고 초라한 나에게 보내주었도다.”
태사공(太史公·사마천)이 말하기를 ‘권력으로 합한 자는 권력이 떨어지면 교분이 성글어진다’고 하였는데, 그대는 그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