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학자로 유명한 경희대 김상욱 교수는 죽음에 관해 이런 말을 했다. ‘우주에 생명이 있다는 것이 원래 비정상적인 거다. 우주는 죽음의 공간이다. 따라서 살아 있다는 것이 아주 이례적이기 때문에 굳이 안타까워하거나 애달파할 필요가 없다. 죽는다는 것이 허무하다는 생각이 든다면 우리 모두 결국 죽어 분해가 되어 원자가 되고 공기 중에 흩어져 날리다 어느 별에
1980년대 초등학교 시절, 방학마다 시골 할머니 댁에 놀러갔다. 한 번 가면 일주일가량 머물며 마을 곳곳을 놀러 다녔는데 서울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신기한 구경거리가 하나 있었다. 바로 꽃으로 장식한 상여를 둘러멘 어른들의 모습과 긴 장례행렬이었다. 지금은 영화나 드라마 속 장면에서만 겨우 볼 수 있지만, 장례 행렬을 이끄는 이가 종을 딸랑거리며 ‘이제
어머니는 요양병원에서 두 달 있다 돌아가셨다. 어느 날 ‘어머니의 임종 준비를 해야 할 것 같다’라는 여동생의 연락을 받고 요양병원으로 달려갔다. 산소마스크를 쓰거나 링거를 꽂은 채 요양병원 침상에 미동도 하지 않고 누운 창백한 노인들의 얼굴은 마치 시신 같아서, 나는 흠칫 놀랐다. 여동생들은 의식 없이 누운 어머니 곁에 모여 있었는데, 어머니 맨발이 담요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14일 전두환 전 대통령이 입원한 것과 관련해 "아주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5·18의 진실을 밝히고 진심으로 사죄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송 대표는 이날 SNS에서 "긴급 입원 소식을 듣고 유명한 라틴어 구절 '메멘토모리'(당신이 죽는다는 사실을 기억하라)를 떠올린다"며 이같이 말했다.
송 대표는 "저는 5·18을 직접 겪은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14일 신촌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는 상태인 전두환 전 대통령을 향해 "아주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5.18의 진실을 밝히고 진심으로 사죄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송 대표는 이날 자신의 SNS에서 "저승에서 만날 5.18 영령들뿐만 아니라 지금 살아가는 피해자들에게도, 미래를 짊어질 후세들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짚어야 할
40회를 맞은 국내 최장수 현대무용축제에 국가 대표 무용단, 한국 대표 현대무용가들이 모인다. 25일부터 다음 달 13일까지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서강대 메리홀 등에서 무용의 맛을 느낄 수 있다.
이해준 조직위원장은 18일 서울 중구 더 플라자 호텔 다이아몬드홀에서 열린 '국제현대무용제(MODAFE·이하 모다페) 2021' 기자간
모든 기업과 그 기업에 속한 종사자들은 다 안다.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라는 걸. 인사 하나 잘못하면 큰 조직이든 작은 조직이든 근간이 송두리째 흔들릴 수도 있어서다. 그래서 인사 때면 어느 조직이든 심각하다.
이런 암묵적인 기본이 가장 무시되는 사회가 정치의 세계다. 개혁인사다, 발탁인사다 하면서도 결국은 ‘코드인사’로 귀결된다. 지금 한국과 일
땡-큐. “나쁜 일은 땡, 좋은 일은 큐”, 송년회에서 들은 인상적 건배사다. ‘땡큐’(Thank you), 좋은 일은 불러들이고, 나쁜 일은 마감하는 데 감사가 최선의 방법이라는 나름의 해설이었다.
집에 돌아와 올해 감사한 일, 감사드릴 분들을 떠올려 보니 어려운 매듭이 풀린 것은 모두 내가 잘난 덕분이 아니라 남의 도움 덕분이었다. 바쁘다는
문국진(文國鎭·91) 박사는 우리나라 최초의 법의학자다. 1955년 설립된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창설멤버인 문 박사는 당시 국내에 생소했던 ‘법의학’이라는 분야를 뿌리내리고 기틀을 잡는 등 한국 법의학계의 큰 스승과 같은 인물이다. 그런 그가 말하는 인생의 스승은 바로 ‘죽음’이라고 한다. 수많은 주검을 부검했던 문 박사는 요즘도 부검을 하고 있다. 바로
지난 4월, 내 핸드폰의 바탕화면에 ‘memento mori(메멘토 모리)’라는 문구를 넣었다. 라틴어로 죽음을 생각하라는 뜻을 가진 이 말을 품고 다니게 된 이유는 내가 라틴어를 잘 알고 있어서도 아니고, 갑작스레 세상을 달관한 철학자로 살자는 뜻도 아니다.
‘죽음’이란 단어는 누구에게나 그리 달갑지만은 않은 말일 것이다. 살면서 처음 접하는 죽음에 대
최근 ‘메멘토 모리(Memento Mori)’가 자주 화두에 오르고 있다.
메멘토 모리는 인간은 항상 죽음, 마지막을 염두에 두면서 살아가야 한다는 의미다.
로마시대 때는 전쟁에서 승리해 개선한 장군 뒤에 노예 한 명을 따라 붙여 “메멘토 모리”를 외치게 하는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이는 승리감에 들뜬 장군들에 대한 일종의 경고 메시지였다.
우쭐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