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행이나 마음씨가 곱고 바르며 상냥하다는 의미인 형용사 ‘착하다’를 ‘착한 가격’처럼 잘못 사용하는 요즘 세태가 못마땅하지만 ‘착한 금융’쯤으로 부르면 이해가 좀 쉽겠다. 대표적 서민대출 상품인 미소금융이나 햇살론, 새희망홀씨 대출 등 정부 주도의 금융포용에 익숙한 우리나라와 달리 요즘 세계 각지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금융포용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우선 자와디샤(Zawadisha)라는 비영리기구를 보자. 자와디샤는 ‘선물을 주다’라는 뜻인데 현재 소액대출의 새로운 모델을 실천에 옮기고 있다. 그들은 일단 60달러 가량을 대출해준 뒤 이를 성공적으로 갚아 신뢰를 쌓으면 350달러로 대출한도를 올려준다. 소액대출과 함께 예방적 건강관리, 교육 등을 통해 낙후지역 여성들의 지위 향상을 도와주는 게 이 조직이 지향하는 목표다. 요즘엔 소자본으로 사업을 하려는 사람에게 자금을 대주는 마이크로론(micro-loan)이나 단열, 난방 등 에너지 절약을 위한 개보수에 무이자로 자금을 빌려주는 에코론(eco-loans) 같은 서비스도 시작했다. 가난한 이들을 위한, 여성을 위한 금융포용을 실천하는 조직이다.
지난 2009년 설립된 미국의 비영리단체 지디샤(Zidisha)는 개발도상국의 가난한 기업가들에게 소액 대출을 해주는 크라우드펀딩 웹페이지를 운영하고 있다. 금융 소외계층에 대출을 해준다는 점에서 그라민은행과 비슷하다. 그러나 지디샤는 세계 최초로 자금 수요자와 공급자를 중개기관 없이 직접 P2P(Peer to Peer) 방식으로 연결해주고 있다. 실제로 케냐 나이로비에 거주하고 있는 한 그래픽 디자이너는 지디샤를 통해 티셔츠와 잉크 구입자금 50달러를 대출받아 티셔츠를 제작한 뒤 인근의 호텔과 상점에서 판매해 대출금을 상환했다고 한다. 평소 인터넷 카페를 이용해 티셔츠를 디자인하던 그는 다시 지디샤를 통해 누군가로부터 150달러를 대출받아 포토샵 등 소프트웨어를 갖춘 컴퓨터를 구입했고, 열심히 디자인한 상품을 팔아 상환했다. 최근엔 자신의 작품을 전시하는 갤러리와 상점을 개설하고자 884달러 대출을 신청한 상태다. 상환기간은 3개월. 그에게 대출을 해주고자 하는 사람은 직접 이자율을 0%에서 15% 사이에서 선택할 수 있다. 한 국제기구가 추정한 바에 따르면 소액대출의 국제 평균이자율이 35%에 이른다니 지디샤를 통한 대출이 얼마나 유리한지 알 수 있다.
미국의 ‘지역개발 발전기금’(CDFI)은 주류 금융기관들로부터 금융서비스를 제대로 받을 수 없는 저소득 공동체를 지원한다. 그 뿌리는 매우 깊다. 1865년 설립된 프리드먼 저축신탁회사는 노예에서 해방된 지 얼마 안된 흑인들을 위해 17개 주에서 37개 점포로 출발했다. 20세기 초 오클라호마에서 인디언, 샌프란시스코에서 중국인, 클리브랜드에서 여성 등 비주류를 위해 특별한 금융회사가 연이어 설립되기도 했다. 현재 미국에서 884개의 공인된 CDFI가 각기 다른 방식으로 활동하고 있다. 소기업과 자영업자, 사회적기업 등에 자금을 지원하고 은행 이용이 어려운 사람들에게는 소매금융 서비스도 제공한다.
사회와 환경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업 또는 기업에 돈을 대주는 임팩트 투자도 금융포용이 확장된 형태로 볼 수 있다. 최근엔 정부 예산이 필요한 공공사업을 민간 금융회사 돈으로 먼저 수행하고, 나중에 목표 달성 여부를 평가해 정부가 갚는 ‘사회성과 연계채권’(SIB)이 주목을 끌었다. 서울시가 사회성과 연계채권을 발행하고 이를 KDB대우증권이 인수하는 형태로 추진돼 왔고, 이미 언론을 통해 대대적으로 보도가 되기도 했는데 최근 서울시 의회가 이 안건을 부결시키면서 다시 화제를 모았다. 소년소녀 가장들 4~5명을 모아 가족처럼 살도록 한 ‘그룹홈’의 아동들을 도와주려던 당초 계획은 사회성과 연계채권 발행이 무산되면서 원점으로 돌아가게 됐다. 서울시 의원들이 이를 무산시킨 이유는 여러 가지겠지만 결과적으로 사회 취약계층을 위한 금융을 활성화하는데 적지않은 타격을 주게 됐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금융포용이 다양한 형태로 발전하고, 새로운 영역을 만들어가고 있는데 과연 우리는 어디쯤 가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