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과 불을 이용하여 토기를 구워내던 사람들의 지혜는 마침내 금속의 발명을 가져왔다. 인류가 처음으로 만들어 사용했던 금속은 청동기였다. 청동은 구리에 비소라든가 주석, 아연과 같은 이물질을 섞어 단단하게 만든 금속을 말한다. 지중해 연안에는 기원전 300년경부터 시작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기원전 1000년경, 더 소급하는 경우는 기원전 1500년경부터 청동기시대에 돌입한 것으로 보고 있다. 바로 이 시기에 고조선이 세워졌던 것으로 추정된다.
권력자의 등장과 성차에 대한 사회적 불평등 발생
청동기시대는 생산 분야에서 노동력이 요구되면서 남성의 참여 비중이 높아지고, 금속무기를 사용한 전쟁 등을 통해 무력적인 힘에 대한 가치가 중요시되었다. 이러한 시대에 여성의 임신과 출산은 힘, 기동력을 저하시키는 원인일 뿐이었다. 임신과 출산이라고 하는 생물학적 성차가 이제는 사회적 불평등으로 변화되기 시작하였다.
기원전 4~3세기경 철기문화가 유입되면서 국가의 발생은 더욱 촉진되었다. 이 때 생긴 나라가 부여, 고구려, 백제, 신라, 옥저, 동예, 가야 등이다. 철제도기의 제작과 사용, 호미, 괭이, 낫, 반달칼 등 철제농기구의 사용은 토지개간과 심경(深耕)을 가능하게 하여 농업 생산력의 획기적인 발전을 가져왔다. 또한 철제무기를 사용함으로써 정복전쟁이 더욱 가속화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고대국가의 성장과 궤를 같이하는 것으로 만주와 한반도에는 철기문화를 배경으로 다양한 국가가 새롭게 등장했다.
국가란 공적인 기구의 성립은 공사(公私) 영역의 분리를 가져왔다. 임신과 출산이라고 하는 생물학적 기능에서 육아까지 담당해야 하는 여성은 주로 가사와 육아라고 하는 사적인 영역에 남게 되었다. 사유재산과 지배 피지배 관계의 발생은 남성 위주의 지배질서로 고착화되었다. 생물학적 기능의 차이에서 비롯한 성별 분업이 이제는 공사영역의 분리로 이어진 것이다. 그런데 사적인 영역에 대한 평가가 이루어지지 않다보니, 여성은 정치적, 사회적 공적 세계에서 배제되고, 남성에 비해 저평가되기 시작했다.
종교적 측면에서 여전히 여신, 여사제 숭배
그렇지만 여성들이 공적인 영역에서 완전히 배제된 것은 아니었다. 청동유물을 살펴보면 청동기시대에 무력과 같은 힘에 대한 가치가 부각되었지만 또한 종교와 같은 상징성도 중시되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청동기 유물은 청동양날칼, 청동꺽창 같은 무기류가 있고, 청동거울, 청동방울과 같은 의기류가 있다. 이들 청동기는 무력적인 힘과 함께 지배자의 권위를 한층 보여주는 장엄구로서 종교적인 상징성을 보여준다. 무기류는 남성이, 의기류는 여성들이 사제의 역할을 할 때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고구려에서는 시조(주몽)를 낳은 시조모인 유화(柳花)를 부여신으로 숭배하였으며, 신라에서는 선도산에 사는 선도산성모(仙桃山聖母)가 혁거세와 알령이라는 신라 시조를 낳았다고 하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신석기 시대 여성상의 출토나 여신숭배의 전통이 금속기가 사용된 이후 점차 약화되기는 하였지만, 여전히 여신이나 여사제의 모습으로 계승되어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제2강=고고학적 유물로 본 여성의 역사(김선주, 중앙대)/ 자료제공=(사)역사․여성․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