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과 일본의 가장 첨예한 외교문제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이다. 핵심은 일제강점기 여성들을 ‘강제’로 끌고 갔는가와 이러한 여성동원과정에 일본군과 일본정부가 개입했느냐이다. 이에 대해 일본정부와 우익들은 여성동원은 민간업자들이 한 일이며, 일본군 ‘위안부’는 일종의 공창이며 상행위라는 주장이다.
1990년대 김학순의 증언 이후 ‘위안부’문제 세상
일제강점기(1910-1945년) 여성들의 독립운동은 비단 국내에서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만주, 노령, 상해, 하와이, 미국 등에서 여성들은 독립운동을 활발하게 펼쳤다. 여성들의 독립운동은 대체로 군자금을 모금해서 전달하는 일, 여성교육활동에 나서는 일, 군사적 행동을 감행하는 의열 활동으로 나눌 수 있다. 어떤 여성들이 어떻게 항일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는지
구국에 앞장 선 여성들
1898년 북촌여성들이 중심이 되어 발표한 ‘여권통문’은 한국의 여권운동의 시작을 알리는 사건이었다. 이들은 여성도 남성과 같은 인간이므로 똑같이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고, 국가가 여성교육을 위한 학교를 설립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국가가 여학교를 설립하지 않자 직접 순성여학교를 설립해 운영했다.
국채보상운동에서부터 단
1876년 한국사회는 반강제적인 개항으로 반봉건 반외세를 시대적 과제로 제기하며 근대로 진입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개화사상 개화운동이 등장하였다. 개화론 속에서 인구의 절반인 여성이 개화되어야 한국인이 개화될 수 있다는 전제 아래 여성도 교육받아야 한다는 여성교육론이 등장했다. 민중운동 역시 천주교와 동학사상 등의 영향으로 봉건사회 여성들의 삶에 천착하고
최근 한국여성의 대학 진학률이 80%를 넘어서 남성의 진학률을 앞섰다. 오늘날 배움의 기회에서 남성과 여성의 차이는 없다. 그러나 조선시대, 여성을 위한 학교교육이 전무했던 시기에 여성들은 배움의 갈증을 어떻게 해결했을까?
역시 한글의 발명이 여성들의 지식 습득에 획기적인 영향을 주었다. 조선은 초기부터 한글로 번역한 여성들이 갖추어야 할 덕목을 적은
오늘날도 남녀가 혼인할 때 서로 오고가는 예물로 인해 신랑측과 신부측이 서로 얼굴을 붉히는 경우를 흔히 본다. 중국의 경우 혼인할 여자의 운명은 가져갈 지참금에 달려 있었고 딸 몫으로 재산을 상속받는 일은 지참금 외에는 없었다.
조선중기까지 부부 별산제이고, 제사도 윤회봉사로 돌아가면서 맡아
그러나 조선에는 지참금이 없었다. 조선이 여자들은 남자형제
오늘날에도 ‘결혼(혼인)한다’는 말 대신 ‘장가간다’, ‘시집간다’라는 말을 사용한다. ‘장가간다’는 장인 집으로 간다는 말에서 유래했고 ‘시집간다’는 시집(시가)으로 간다는 뜻이다. 이 두 가지 말의 유래와 의미를 따져보면 조선시대 혼인 풍속의 변천사를 알 수 있다.
조선시대 중기까지도 혼인 자체를 여자 집에서 하고 남자가 여자 집에 한동안 머물러 사
텔레비전에서 방영하는 사극의 꽃은 왕비이다. 화려한 옷차림은 물론이고, 궁중 내 여성들 간의 암투와 권력 투쟁은 극을 더 재미있게 만든다. 그런데 대체로 왕비는 항상 인자하고 후덕하며 우아한 모습으로 표현되는 반면, 후궁은 표독하고, 남을 모해하고, 권력 지향적인 인물로 나타난다. 왜 그럴까, 부덕(婦德)을 강조하는 유교적 이념 때문이다.
궁궐에는 왕비
왕건이 세운 고려시대 여성은 어떻게 살았을까? 고려시대말 포은 정몽주, 야은 길재와 함께 삼은(三隱) 중 한분인 목은(牧隱) 이색(李穡, 1328-1396)의 처인 정신택주(貞愼宅主, 1331-1394, 정신택주는 조선시대의 정경부인에 해당하는 부인에게 주는 일종의 관직) 권씨를 통해 고려시대 여성의 삶을 들여다보자.
이색은 14세 때, 11세의 당대
한국 역사에 등장하는 첫번째 여성인물은 熊女이다. 웅녀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이 한민족의 시조로 고조선을 세운 단군을 낳았다. 웅녀와 고조선에 대해서는 『삼국유사』 고조선조에 실려 있다.
곰이 인간이 되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웅녀는 곰을 숭배하며 수렵생활을 하는 선주토착민이었고, 웅녀의 배우자가 되었던 환웅은 새로운 농경문화를 가지고 온 이
흙과 불을 이용하여 토기를 구워내던 사람들의 지혜는 마침내 금속의 발명을 가져왔다. 인류가 처음으로 만들어 사용했던 금속은 청동기였다. 청동은 구리에 비소라든가 주석, 아연과 같은 이물질을 섞어 단단하게 만든 금속을 말한다. 지중해 연안에는 기원전 300년경부터 시작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기원전 1000년경, 더 소급하는 경우는 기원전 1500년경부터 청동
1977년, 평양시 역포 구역 대현동 구석기 유적에서 사람뼈 화석이 발견됐다. 우리나라는 산성토양으로 인골(사람의뼈)이 나오는 사례가 희귀한 편이기 때문에 당시 이 사람의 뼈가 발견된 것은 매우 이례적이었다.
이 화석인류는 출토된 머리뼈 상태와 크기 등으로 7~8세 정도의 여자아이일 것으로 추정했다. 한반도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여성 인골이다. 이 여성
△편집자주
이번 기획연재는 지난 6월 9일부터 9월 29일까지 이투데이 교육센터에서 진행한 (사)역사․여성․미래 주최 ‘여성사 강사 양성과정’의 총17회 강의 내용을 일반인이 알기 쉽게 요약한 것이다. 이 과정은 여성가족부의 ‘양성평등 및 사회참여 확대사업’ 공모 사업에서 선정된 것으로 총 42명이 참여한 가운데 진행된다. 이론 강의 외에 5회의 답사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