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현실에서 금융은 기업의 생명줄이다. 영리기업은 말할 것도 없고, 돈벌이만큼이나 사회적 미션을 중시하는 사회적기업들도 금융 없이 살아 갈 수는 없다. 금융시장의 순기능을 극대화하고, 그 힘을 기업에 불어넣으려는 노력이 중요한 이유다.
금융회사와 투자자들이 좀더 착해지고 정의로워질 수 있을까. 지난달 16일 프란치스코 교황은 바티칸에서 열린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투자’(Investing for the Poor) 심포지엄에 모인 청중에게 “금융의 세계에서 윤리가 제 역할을 하는 것, 시장이 인간의 선한 본성과 사람들의 이익에 봉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교황은 또 현재의 금융시장이 지닌 문제들을 거칠게 공박했다. 그는 금융시장에 대해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충족시켜 주기보다는 인간의 운명을 결정짓는다. 많은 사람들에게 엄청난 빚을 안겨주는 금융투기로 막대한 부를 약탈한다”며 “더 이상 참을 수 없다”고 말했다.
빈자와 약자를 찾아가 정의의 목소리를 내온 교황의 뜻은 분명하다. 금융은 정의에 뿌리를 두어야 하며, 투자자들은 지속 가능한 세상을 위해 행동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주목할 것은 이날 교황이 우리에게 익숙한 지속 가능성(Sustainability)이나 사회책임투자(SRI:Socially Responsible Investing) 대신 임팩트 투자(impact investing)를 강조했다는 점이다. 교황은 임팩트 투자에 대해 ‘재무성과뿐 아니라 측정 가능한 사회적, 환경적 임팩트를 만들어 내기 위한 투자’, ‘가난한 이를 섬기는 수단으로 큰 역할을 하는 투자’라고 규정했다.
금융시장에서 일반적인 투자는 경제적 이익을 추구한다. 사회책임투자는 경제적 성과뿐 아니라 ESG(친환경, 사회적 기여, 투명한 지배구조)로 표현되는 비재무적 성과가 좋은 기업에 투자한다. 담배회사나 무기 제조회사, 온실가스 배출의 주범으로 인식되는 화석연료회사 등에 투자하지 않는다는 네거티브 원칙도 이에 해당한다. 현재 국회에 발의돼 있는 ‘국민연금법’ 개정안 102조 2항에서 국민연금기금의 운용 목적을 수익 증진에 한정하지 않고 ‘국민연금의 공익적 성격을 고려한 사회적 책임투자로 수익률과 공공성을 함께 챙기자’는 시도가 대표적이다. 교황이 언급한 임팩트 투자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교황은 임팩트 투자를 하는 사람을 ‘매우 심각한 불공정, 사회적 불평등, 빈곤이 공동체와 인류 전체에 상처를 입힌다는 사실을 잘 인식하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묘사했다.
임팩트 투자의 이런 성격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 제대로 된 임팩트 투자를 찾아보기 어렵다. 기부나 자선활동이 확대될수록 시장 질서는 왜곡된다. 단순기부 대신 경제적 이익과 사회경제적 성과를 함께 추구하는 임팩트 투자는 지속 가능한 기업에 투자해 시장을 키우고 고용을 창출하는 선순환을 기대한다. 대기업의 사회공헌 예산이 대부분 기부금으로 지출되는 한국적 현실에서 임팩트 투자는 그 대안이 될 수 있다. 정부나 지자체 등 공공부문도 예산을 직접 집행하기보다는 사회적 임팩트를 추구하는 민간기업들에 투자하는 방식을 확대한다면 적은 비용으로 더 나은 성과를 거둘 수 있다. 이미 일부 지자체가 시험적으로 운영하며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임팩트 투자 활성화를 키울 방법을 고민할 때다.
교황은 “전 세계 정부는 임팩트 투자를 위한 시장을 활성화할 의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배제의 경제, 버림의 경제에 맞서 싸울 의무가 각국 정부에 있다고도 했다.
오는 8월 방한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우리 나라의 임팩트 투자 현실을 들여다보고 한 마디쯤 해 줬으면 한다. 그 어떤 축복의 말씀보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최고의 선물이 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