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조사 결과에 따르면 남자 12.7년(16.3%), 여자는 17.9년(21.2%)을 질병이나 사고로 인해 아픈 상태로 살아가는 것으로 드러났다. 세계보건기구(WHO)에 의하면 선진국 국민의 경우 전체 수명 중 건강하지 못한 수명은 10% 정도로 추정되고 있다. 결국 우리의 수명은 세계적으로 길어지고 있지만 건강하지 못한 수명이 지나치게 길어서 삶의 질이 낮아지고 있다. 무병(無病)장수의 시대가 아니라 유병(有病)장수의 시대가 열린 셈이다.
은퇴를 준비하는 사람 중 상당수는 건강하지 못한 상태를 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제는 건강하지 못한 시기를 적극적으로 준비하는 노후 준비가 필요하다. 그래야 자신과 가족이 모두 행복해질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첫째, 건강하지 못한 기간을 예상해야 한다. 자신의 수명 중 최소한 10% 정도는 병원을 출입하며 살아가거나 좀더 심하면 간병을 받아야 한다는 예상을 해야 한다.
둘째, 간병 방법을 미리 고민해 봐야 한다. 일반적으로 간병 초기에는 배우자의 간병을 받으면서 집에서 거주할 것이다. 하지만 배우자마저 건강이 나쁘거나, 병이 위중해지면 전문적 요양시설에서 간병 서비스를 받게 된다.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을 이용하는 방법과 비용에 대해 미리 준비할 필요가 있다.
셋째, 여성의 간병 방법을 보완해야 한다. 여성은 남성보다 기수명이 7~8년 더 길다. 배우자와 사별한 후 홀로 생활하다가 간병기를 맞이할 가능성이 크다. 여성들은 치매로 고생할 가능성 또한 훨씬 높다. 따라서 남성보다 훨씬 많은 간병비용을 준비해야 이 시기를 잘 보낼 수 있다. 만약 준비가 소홀해 자녀 등 주위의 도움을 받으면 노후생활의 행복도가 많이 하락하게 된다. 미리 서비스가 좋은 요양시설을 예약해 놓고, 최소한 3년 이상을 지낼 비용을 마련해 둘 필요가 있다.
넷째, 몸은 건강하지 못하더라고 마음은 행복할 수 있는 대비책을 세워야 한다.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고들 말한다. 은퇴 설계에서는 틀린 말이다. 고령으로 건강이 안 좋아질 가능성이 큰데, 건강하지 않다고 해서 불행해지면 곤란하기 때문이다. 인간 삶의 본질을 좀더 잘 이해해 건강 여부에 무관하게 자신만의 생활철학을 갖추면 좋을 것 같다. 비록 몸은 불편하고 병에 걸리겠지만 마음은 계속 건강을 유지할 수 있도록 정신적 건강을 챙기는 방법을 배울 필요가 있다.
유병장수 시대를 말하면 많은 사람들이 우울해진다고 한다. 자신은 그렇게 아프기 전에 죽어 버릴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종종 있다. 장수시대를 살아갈 구체적 준비와 마음의 대비가 부족하면 이런 반응이 나온다. 외국의 경우 50대 이후 행복도가 지속적으로 상승한다. 이렇게 되려면 질병, 재산의 고갈, 외로움 등을 극복할 수 있는 대비책이 필요하다. 이제부터라도 간병기를 직시하는 준비를 시작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