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를 건너서 창조로, 창조를 넘어서 창조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트위터에는 최근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를 이같이 평가하는 글이 올라왔다.
이 글은 윤동주 시인의 ‘새로운 길’ 중 한 구절인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를 차용한 표현이다. 시 ‘새로운 길’이 변화를 보여주는 데 반해 이 트위트는 창조를 반복해 사용했다.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가 길을 잃고 공전만 하고 있는 걸 꼬집은 것이다.
박근혜 정부의 집권 1년차인 지난해는 창조경제의 실천보다 창조경제의 뜻을 파악하기 위해 허비된 세월로 평가되고 있다.
미래창조과학부와 산업자원부, 중소기업청은 과거 정권이 내놓은 것과 차별되지 않는 정책을 쏟아내며 머리말에 창조경제를 붙였다. 산·학·연 연계 확대, 인터넷 생태계 조성, 엔젤투자 강화 등이 모두 과거부터 거론된 정책들이었다.
차별되지 않은 정책에 차별화된 표현, 혼란은 커졌다. 공대를 졸업한 기업인·학자·엔지니어의 모임인 공학한림원은 최근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를 “과거 정권이 추진한 ‘녹색성장’ ‘지식기반’ ‘혁신경제’ 등과 유사하다”고 지적했다. 박근혜 정부가 이전 정권과 차별되지 않은 정책을 표현만 바꿔 재탕하다 보니 개념이 잡히지 못한 셈이다.
그나마 ‘벤처·중소기업 활성화’는 창조경제의 축으로 자리 잡았지만 성과가 기대에 못 미쳤다.
제18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지난해 2월 국정과제 ‘창업·벤처 활성화를 통한 일자리 창출’에서 “엔젤지원형 세컨더리 펀드 확충”을 언급했다. 이후 지난해 엔젤투자 소득공제 확충과 같은 소기의 성과는 있었으나 대대적인 펀드 확충은 25일 발표된 경제혁신 3개년 계획에 다시 포함됐다.
한 중소기업 관계자는 “펀드가 활성화된다면 좋겠지만 아직 투자 회수에 대한 방안 마련이 미흡해 실질적 혜택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고 평가했다.
박근혜 정부가 창조경제로 꼽은 공공기관 개혁도 진전되지 못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취임 전부터 공기업 개혁을 외쳤다. 공기업 개혁을 통한 경제성장의 발판을 마련하겠다는 말도 했다. 그러나 지난해에는 원전 등 공기업의 각종 입찰 비리가 드러나면서 쇄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커졌다.
이처럼 창조경제가 제자리를 찾지 못하는 것은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후보 시절과 당선 뒤의 정책 방점이 바뀌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정권 출범 전에는 창조경제와 경제민주화가 연계됐다. 그러나 집권 이후에는 정부가 경제민주화 표현을 빼버리면서 창조경제의 구심점이 모호해졌다는 것.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박 대통령은 과거 창조경제가 분배라고 언급하며 경제성장이 골고루 분배되지 않는다고 했다”며 “창조경제가 성과를 내려면 정책에 대한 혜택이 대기업에 집중되는 것을 사전에 조치해 패러다임을 바꿔야 했다”고 말했다.
박 평론가는 “창조경제는 기본적으로 중소기업이고 이스라엘과 독일은 중소기업 중심으로 국가경제가 돌아간다”며 “그러나 박 대통령은 불과 얼마 전에도 대기업에서 규제완화를 얘기해 자칫 창조경제가 말잔치로 끝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는 점점 커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창조경제가 정부 주도로 진행되는 것도 걸림돌로 평가된다. 정부 주도의 사업 추진은 박정희 전 대통령과 박근헤 대통령의 정책 차별성을 희미하게 만든다는 이유에서다.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과 지역상의 회장단 70명은 지난 20일 “정부 계획을 기업이 따르는 과거의 방식에서 벗어나 기업과 정부가 서로 제안하고 수용해 피드백을 주고받는 팀 플레이를 펼쳐야 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2월 20일 제18대 인수위원회가 발표한 140대 국정과제와 경제혁신 3개년 25개 실행과제를 비교하면 실행과제 25개 중 15개(60%)가 인수위 국정과제와 동일했다. 창조경제가 제 갈 길을 모른 채 남은 4년간 정책 되새김질만 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는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