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프는 지난 2년 동안 9213억 엔의 적자를 계상하여 자기자본비율이 위험수역인 6%까지 내려갔으며, 유이자 부채만 1조1694억 엔에 이른다. 현재 샤프는 분기별로 30억 엔 정도의 흑자를 내고는 있지만, 이것만으로 재무구조를 개선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며, 지금 주력은행의 지원 하에 부활 시나리오 작성에 골몰하고 있다. 유력 시나리오 중의 하나가 삼성과 합작회사를 설립하는 안이었다. 샤프가 복사기 사업을 분리하여 삼성과 합작으로 자회사를 설립한다는 시나리오인데, 삼성 측은 샤프와의 합작으로 대형복사기 분야의 기술이나 특허를 손에 넣을 수 있고, 샤프 측은 삼성의 글로벌 비즈니스 능력을 활용하여 대형복사기 사업을 글로벌로 전개할 수 있으며, 무엇보다도 재무구조를 개선할 수 있다. 최근 아베노믹스로 주가가 상승하고 또 은행관계자들은 삼성이 2000억 엔까지 출자할 수 있다고 하였기 때문에 샤프로서는 회생을 위한 절호의 기회였던 셈이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삼성과 샤프의 합작회사 설립 안은 무산되었고, 힘이 빠진 샤프의 공모증자도 연기가 불가피하다고 한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보도에 의하면, 캐논이나 리코 등 일본의 다른 복사기 업체들이 샤프와의 상호라이선스를 문제로 삼으면서 삼성과의 제휴를 반대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교도통신의 보도에 의하면 케논의 미타라이 후지오 회장 겸 사장까지 적극적으로 반대에 나섰다고 한다. 한 샤프의 사원은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려는 낡은 업계 체질과 삼성이 대형복사기 사업에 뛰어드는 것을 어떻게 해서든지 막겠다는 의도 때문이다”라고 했다.
자국이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는 산업 분야에 외국기업이 뛰어드는 것이 달갑지 않는 것은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해당 기업이 자금난으로 만약 도산에 이르게 된다면 그 책임을 업계가 어떻게 질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일본에서는 업계와 정부가 나서서 개별기업의 구조조정에 관여하는 사례들이 종종 있다. 자동차 전용 마이콘 등을 생산하는 비메모리 반도체 기업인 르네사스일렉트로닉스가 동일본 대지진으로 8개의 공장이 조업을 중단하는 등의 피해에다 고(高) 코스트 체질로 경영난에 봉착하자 자본 부족을 해소하기 위해 증자를 실시하기로 했다. 모기업인 NEC가 여유가 없다며 자본 투입을 거절하자, 미국계 펀드인 콜버그 글라비스 로버트(KKR)가 르네사스에 1000억 엔을 출자할 의향을 보였지만 일본 자동차 업계가 반대에 나섰다. 이유는 자동차용 마이콘 가격 인상이 예상되며, 기술이 해외로 유출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결국 일본 자동차업체 등이 공동으로 116억 엔을 출자하였고, 일본 정부 산하 조직인 산업혁신기구가 1383억 엔을 출자하였다. 일 기업의 기술유출 방지를 위해 정부가 막대한 공적자금을 투입하는 모양새가 되었지만 아직까지 회생 소식은 들려오지 않고 있다.
일국의 산업에는 쇠퇴산업과 성장산업이 있기 마련이다. 이때 정부의 역할은 쇠퇴산업의 자원이 성장산업으로 원활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정책을 구사하는 것이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기술 유출을 이유로 경쟁력이 약화된 좀비기업 구제에 엄청난 자금을 쏟아붓고 있다. 메모리 반도체 기업인 엘피다메모리가 경영난에 봉착했을 때, 일본 정부는 출자와 융자로 400억 엔을 지원했지만, 결국 2013년 7월에 경영권을 미국 마이크론테크놀로지에 넘겨주고만 교훈을 아직도 살리지 못하고 있다.
일본의 업계 관계자나 정부 정책 담당자들 사이에서는 한국기업이 일본기업을 따라잡은 것은 기술 유출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상당수 있다. 일본기업들의 경쟁력 약화가 기술에 대한 맹신으로 인해 고비용 구조나 진부한 비즈니스 모델을 개선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인식하기 전까지는 일본의 정책 실패는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일본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하는 좋은 사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