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사장단과의 오찬자리에서 휴대폰과 카메라 등 신제품 보고를 받고 경쟁사를 어떻게 이길지에 대해 논의했다. 특히 이 회장은 “3년 안에 카메라를 1등으로 만들라”고 주문했다.
카메라는 휴대폰이나 TV 등에 비해 시장 규모가 작고 이 회장이 지금까지 이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쏟았다고 알려진 적이 없어 주목을 끌었다.
삼성전자는 TV, 휴대폰, 모니터, 메모리반도체 등 세계 1등 제품을 상당수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 생활가전(냉장고, 세탁기 등), 카메라, 시스템 반도체 등에서 세계 시장의 높은 벽을 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09년, 삼성전자는 창립 40주년을 맞아‘비전 2020’를 발표하고 매출 4000억달러, 전자업계 압도적 1위, 글로벌 톱10 기업 달성을 목표로 정했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선 기존 1등 제품 외에 다른 제품도 1등에 올라야 한다.
급변하는 글로벌 기업 환경 속에서 ‘진정한 초일류 기업’으로 도약하고 ‘창조적 리더’로 거듭나기 위해 삼성전자는 온 힘을 쏟고 있다.
윤 사장은 올 초 생활가전 사업을 맡은 후 일명 ‘윤부근 냉장고’(지펠 T9000)와 ‘윤부근 김치냉장고‘(지펠 아삭 M9000)을 잇따라 출시하며 냉장고에 혁신을 이식시켰다.
지난 7월 출시한 지펠 T9000은 불황에도 불구하고 냉장고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주부들의 사용 행태를 치밀하게 파악해 냉장실을 위, 냉동실을 아래에 배치하는 새로운 접근으로 냉장고의 개념을 바꿨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번에 새롭게 출시한 김치냉장고도 세계 최초로 앞 뒤 옆 에서 냉각을 공급하는 ‘3중 메탈 냉각기술’을 적용하는 등 혁신을 이어가고 있다.
윤 사장은 2015년말 까지 생활가전 세계 1위 달성이라는 목표도 세웠다. 이를 위해 극비 프로젝트도 진행 중이다.
윤부근 사장은 “생활가전 1등을 위한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며 “기능과 디자인 등 모든 부분을 혁신적으로 바꾼 생활가전 제품을 연말 쯤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시스템반도체, 인텔 제쳐라= 삼성전자는 반도체 시장 점유율 세계 1위로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D램과 낸드플래시 등 메모리 부문에서만 그렇다. PC의 두뇌 역할을 하는 CPU를 비롯한 비메모리(시스템반도체) 부문 까지 포함하면 얘기는 달라진다. 압도적인 1위 업체 인텔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간 삼성전자의 시스템반도체 사업은 메모리반도체의 위상에 비해 초라했다. 메모리 반도체는 1992년부터 1등을 지켜왔지만 시스템반도체는 1990년대 말 뒤늦게 투자를 시작해 2008년까지도 10위권 밖이었다. 특히 PC 중심 시대에는 미국 인텔이라는 거대 공룡에 밀려 기를 펼 수 없었다.
분위기를 반전한 건 ‘모바일’이다. 애플 아이폰 이후 스마트폰 시대가 열리면서 PC 시장은 정체됐다. 삼성전자는 이같은 기회를 포착, 2007년부터 스마트폰 CPU인 모바일AP를 집중 공략한 결과 세계 1위에 올랐다. 지난해 삼성전자의 모바일AP시장 점유율은 무려 73%. 특히 삼성전자 스마트폰 갤럭시 시리즈의 성공은 시스템반도체와의 시너지를 극대화 시키고 있다.
이같은 성장을 바탕으로 삼성전자의 시스템반도체 사업은 올해 상반기에만 50억 달러 매출을 돌파하며 4.8%의 점유율을 기록, 인텔(21%) TI(5.3%) 퀄컴(5.1%)에 이어 세계 4위에 올랐다. 일본 르네사스(3.6%)를 가볍게 제쳤다. 아이서플라이 조사 기준으로 삼성전자가 시스템반도체 빅4에 진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삼성전자는 최근 설비 투자를 강화하면서 시스템반도체 사업 역량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2조2500억원을 투입해 화성 시스템반도체 신규라인 S3를 건설할 예정이고, 4조5000억원을 들여 미국 오스틴 낸드플래시 라인을 시스템반도체 생산라인으로 전환한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세계 정상을 차지하고 있는 메모리 반도체에 이어 빠르게 시장이 커지고 있는 시스템반도체 부문에서도 시장을 선도하기 위한 노력”이라고 설명했다.
업계 관계자는 “메모리 하면 삼성전자가 떠오를 정도로 수십년 동안 전세계 메모리 업체 강자로 인식돼 온 삼성전자가 시스템 반도체에 집중하면서 인텔을 위협하고 있다”고 밝혔다.
◇카메라·노트북·프린터도 1등 한다= 지난 6월 삼성전자는 대만 타이베이에서 열린 PC 전시회 ‘컴퓨텍스 2012’에 참가했다. 전시회가 생긴 지 30여년이 지났지만 삼성전자가 참가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32회째를 맞는 컴퓨텍스는 미국 CES, 독일 세빗과 더불어 세계 3대 IT 박람회다. 삼성전자는 그동안 인텔이나 마이크로소프트 부스 등에 노트북과 스마트폰을 전시하는 방식으로만 제품을 선보였다.
올해 삼성전자는 PC 관련 업체들이 모여 있는 난강전시장에 가장 큰 규모로 부스를 꾸렸다. 전시 제품 역시 시리즈9, 시리즈 5 울트라북, 시리즈7 터치스크린 올인원PC, 크롬북 등 다양했다. PC도 세계 1등에 오르겠다는 전략적인 움직임이다.
삼성전자는 복합기 1등을 위한 각오도 다지고 있다. 올해 선보인 제품은 특히 삼성이 처음 내놓은 A3 컬러 복합기다. 삼성전자는 지난 2010년 A3 복합기 시장에 진출했지만 아직은 국내 시장 4위 수준에 불과하다.
남성우 삼성전자 IT솔루션사업부장(부사장)은 “삼성전자는 지난 5년간 지속적인 연구 개발과 투자를 통해 A3 복합기 원천기술을 확보해 왔다”며 “여기에 세계적인 경쟁력을 자랑하는 삼성의 반도체 및 전자 기술을 접목해 일본 및 미국 기업이 과점하고 있는 시장에 신제품을 출시하게 됐다”고 강조했다.
또 “2014년 국내 A3 복합기 시장에서 1위, 3년내 글로벌 선두군에 들어가 토탈 프린팅 솔루션 기업으로 거듭나겠다”고 했다.
이건희 회장이 1등을 강조한 카메라도 마찬가지다.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기술력과 카메라 기술력이 결합한 ‘갤럭시 카메라’가 등장한 것도 1등 삼성을 향한 발걸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