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계 리베이트 수법이 갈수록 교묘하고 대담해지고 있다. 지난 2010년 금품과 향응을 주고받는 당사자 모두를 처벌하는 리베이트 쌍벌제 실시로 규제가 강화됐지만, 이조차 무용지물이 됐다. 정부의 대대적인 단속을 비웃기라도 하듯 리베이트 수법이 점점 진화하면서 당국은 골머리를 앓고 있다.
법망을 피해가면서까지 리베이트를 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뭘까. 비슷한 품목의 복제약(제네릭)으로 경쟁을 할 수밖에 없는 제약업계 구조 탓이다. 더욱이 약가인하로 영업환경이 더욱 처박해지면서 의사들이 처방을 바꾸지 않게 하기 위해 어떤 식으로든 보상해주고자 한다.
하지만 최근 처벌기준이 강화되고 단속이 심해지면서 리베이트는 설문지 조사, 논문번역료 지급, 중간에 광고홍보대행사를 통한 광고계약 등 외형상 합법적인 형태를 띠면서 그 수법은 더욱 치밀해지고 있다.
이같은 행태는 지난 5월 보건복지부가 공개한 리베이트 진화 유형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의사들에게 특정 품목에 대한 형식적인 설문조사 대가로 리베이트를 주거나 광고대행업체를 내세워 의료기관과 광고계약에 따른 광고비를 지급하는 것처럼 위장하는 것은 기본. 의약품 처방내역을 구입한 대가로 정보이용료 형태의 일정 금액을 지속적으로 의료기관에 지급하거나 제약사 계열사를 통해 의사들의 자녀 연수나 리조트 이용권 비용을 지불하기도 했다. 또 개원자금을 무상으로 대여해주거나 의약품 도매상에 직원으로 허위등재한 후 매달 급여를 받는 방법까지 등장했다.
◇실제 적발 사례에서도 진화된 수법 등장 = 지난 3월 쌍벌제가 시행된 이래 최고 액수의 의약품 리베이트가 적발된 사례에서도 지능화·다양화 되고 있는 리베이트 수법의 실체가 드러났다. 의사와 약사 수백 명에게 수억 원의 리베이트를 제공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모 제약사 대표 전모씨는 리베이 트 사실을 숨기기 위해 회사명의로 리스한 고급 승용차를 의사들에게 주면서 리스료와 보험료 및 차량수리비와 견인료도 대신 납부한 것이다.
이어 지난 5월 한 중견제약사는 의약품을 납품하는 과정에서 병원장에게 자사 의약품을 처방해 줄 것을 청탁하고 납품한 의약품 금액의 10~50%를 선할인하는 형태의 리베이트를 범했다. 이는 납품된 약품가격의 일정 비율에 해당하는 금액을 ‘현금·기프트카드·상품권 등의 리베이트’로 제공해 검거됐던 기존의 사례와는 달리, 납품가격의 10~50%에 해당하는 금액을 선할인해 주는 형태의 신종 리베이트 제공행위였다.
의약품뿐만이 아니다. 의료기기 분야도 예외가 없었다. 지난달 쌍벌제 실시 이후 의료기기 리베이트로 첫 적발된 대형 의료기기 구매대행사 2곳의 수법은 단순하면서도 뻔뻔스러웠다. 의료기기 구매 가격을 부풀려 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기기 비용을 과다 청구해 받아낸 것. 특히 이들은 이 기기 비용을 납품업체에 일단 넘긴 다음 나중에 그 차액을 정보이용료라는 명목으로 되돌려받는 치밀함을 보였다. 또 병원은 허위청구서를 묵인한 대가로 60%를 챙겼다.
한 개원의는 “의사들이 리베이트 쌍벌제 이후에도 여전히 리베이트를 받는 것도 사실”이라면서 “아직도 의사 중에는 리베이트가 마케팅 비용이라고 생각하는 정서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 대학병원 교수는 “쌍벌제 실시 이후 리베이트 횟수나 규모가 예전보다 줄어든 것은 사실이지만 변종된 형태로 남아있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어 “리베이트를 마케팅 비용이라고 당연시 여기는 일부 의사들의 정서나 리베이트를 받지 않고도 병원을 운영할 수 있도록 의료계 구조가 개선되지 않고서는 신종·편법 리베이트는 쉽게 근절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용어설명
랜딩비: 제약사와 병·의원이 처음 의약품 거래를 할 때 의약품 채택비로 제공하는 금품을 말한다.
선지원비: 기존 거래처에 자사제품을 사용을 유지하기 위해 추정한 처방액에 대비해 일부 금품을 미리 제공하는 것을 말한다. 이에 반해 후지원비는 실적을 보고 나중에 제공한다.